이기양 신부(서울대교구 10지구장 겸 오금동본당 주임)
성인전이나 천주교 사전을 아무리 찾아봐도 자신의 축일이 나와 있지 않다고 축일을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세월이 오래 지나면 조상들이 후손들한테 잊혀지듯 성인들 축일도 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사라져서 날짜를 찾아볼 수 없는 성인들의 축일이 바로 오늘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내는 이유는 세월의 흐름 속에 성인들 수가 많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한국 천주교회 역시 1984년 여의도광장에서의 시성식을 통해 자랑스러운 103위 성인을 모신 나라가 됐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성인들이 탄생하고, 오랜 세월 축일을 지내온 성인들은 기념일에서 사라짐에 따라 잊혀져가는 성인들을 모아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내게 된 것입니다. 새로운 변화 속에 영광스러운 순교 성인들을 모시게 된 한국 천주교회이지만 이제는 또 다른 욕심을 가져봅니다. 우리 교회에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같은 성인과 성녀 데레사, 본당신부들의 수호자인 아르스의 비안네 신부 같은 성인들이 계신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입니다.
급속한 과학문명 발달과 물질만능 사회는 수 백 년 이어온 기존 권위와 질서를 혼돈에 빠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잉태하지 못했기에 세상과 교회 역시 깊은 혼란 속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일까요? 수도생활과 본당신부 생활에서 또 신자생활에서 살아가야할 길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분들이 우리 교회에 계신다면 수도자와 성직자는 물론 모든 신자들은 행복해질 것입니다.
프란치스코와 데레사 같은 성인이 계신다면 제일 행복해질 분들은 아마 수도자들일 것입니다. 수도자들은 어떻게 수도생활을 하는 것이 옳은 길인지 가까이서 지켜 볼 수 있고, 어려움이 닥치면 면담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세상의 피로에 지친 신자들은 하느님 현존을 깊이 체험하는 고해성사와 미사 은총을 통해 한 순간에 지상에서 천국을 맛보는 주님 은총을 깊이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서울 어느 본당에 비안네 신부 같은 분이 계신다면 우리 신자들의 열심을 고려하건대, 그분께 고해성사를 받으려고 수백 미터 줄은 물론이고 몇날 며칠의 기다림을 마다않는 신자들이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미사참례는 또 어떠하겠습니까? 성인 신부가 계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분께서 집전하는 미사에 참례하려는 신자들로 북새통을 이룰 것입니다. 또 그 미사의 은총으로 세상과 교회생활 속에 받은 상처도 한순간에 치유되는 기적을 체험하는 은총의 장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한낱 꿈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하느님 은총으로 어김없이 있어왔던 2000년 천주교회의 생생한 역사입니다.
불가에서도 이삼백 년에 한 번씩 큰스님이 나와 혼란스러운 교계를 정화하고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역사가 있어왔다고 합니다. 혼란이 극심해 교계 전체가 권위를 잃고 비틀거리면 스님들과 신도들은 더욱 수행정진하고 정성된 기도를 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큰스님이 나오지 않는 것은 자신들의 정성과 기도가 부족해서라고 신도들은 제 탓을 하며 정성을 더하게 되고, 수행자들은 그 염원에 화답하기 위해 더욱 수련에 정진한다고 합니다. 이런 서로간의 정성과 노력으로 모두에게 희망과 위로가 될 큰스님이 탄생함으로써 왜곡되고 혼란에 빠졌던 교계가 정화되고 성장의 계기를 찾는다는 것이지요. 오늘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내며 한국천주교회 미래와 신자들 행복을 위해 전 세계가 부러워할 훌륭한 성인이 탄생하기를 기원해봅니다. 그것은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신자들 삶이 복음화되고 또 무엇보다도 그러한 삶을 지향하는 노력이 강해질 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복음적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며 훌륭한 성인들이 이 땅에 많이 나오도록 주님께 간절히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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