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천민 황일광은 왜 천당이 두개라고 했나?

namsarang 2009. 11. 15. 12:36

[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천민 황일광은 왜 천당이 두개라고 했나?

                                                             
                                                             이기양 신부(서울대교구 10지구장 겸 오금동본당 주임)

한국 천주교회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상황에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평신도들의 자발적 노력으로 태동한 교회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인들을 위해 쓰인 「천주실의」, 「칠극」 등의 예비신자 교리서가 중국을 왕래하던 사람들에 의해 이 땅에 들어오게 되고, 이에 관심을 가졌던 실학자들에 의해 천주학 연구가 시작됐습니다. 1784년 이승훈 베드로가 세례를 받고 귀국하면서 수십 종의 교리서와 성상, 성화, 묵주 등을 가져와 이벽에게 건넸습니다. 천주학을 신앙으로 받아들인 이벽은 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한양 수표교 인근에 있는 집에서 친우들과 천주교에 대해 토론했고 이벽, 권일신, 정약용에게 대세를 주면서 한국 천주교회 공동체가 탄생합니다.

 이렇게 한국 천주교는 평신도들에 의해 시작됐고, 1836년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국할 때까지 두 분의 중국 사제가 활동했을 뿐입니다. 박해 중에도 평신도들의 열성적 활동으로 가꾸고 지켜온 빛나는 전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상으로 볼 때 어려운 여건에서도 맹렬히 활동한 여회장 강완숙 골룸바, 선교사를 모시고자 죽음을 무릅쓰고 5000리 북경 길을 아홉 차례나 다녀온 정하상 바오로, 16살에 장원급제하여 임금과 뭇사람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지만 하느님을 알고부터 세상의 명예와 영광을 쓰레기처럼 버린 황사영 알렉시오 등 신앙 선조들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주교 신자가 되고 나서 복음을 실천하기 위해 세상의 제도와 가치를 뛰어넘은 것은 물론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달레 천주교회사」에 황일광이라는 백정 출신의 천민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처음 신자들 모임에 갔을 때 당대 석학인 양반들이 자신의 옷소매를 끌며 어서 올라오라며 환영했습니다. 천민은 감히 양반의 대들보 위에 오를 수 없는 시대였기에 황일광은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분이 어떻든 서로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천주교회에서는 천주님을 믿으면 죽어서 천당에 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내게는 천당이 두 개 있습니다. 지금 여기가 천국이고, 죽어서 갈 곳도 천국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평신도들은 교회 창립 때부터 주도적 역할을 해왔고 하느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놓는 것은 물론 세상의 모든 제도와 문화를 뛰어 넘어 하느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자랑스러운 선조를 모신 평신도들이 그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고, 삶의 현장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열심히 하자고 마음을 모으는 주일이 오늘 평신도 주일입니다. 평신도들은 성직자나 수도자와 달리 세상에 속해 있고 세상에서 활동하도록 불림 받은 사람들입니다.

 특히 세상 흐름을 복음 정신으로 변화시키고 살아야할 큰 소명을 받았기에 혼란한 세상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로 힘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 중심의 신앙이 자리 잡지 못하면 자칫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보다 세상에 휩쓸려 속화되기 쉽습니다.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 신자들의 복음적 삶이 이어지고 있기에 비신자들에게 앞으로 신앙을 갖게 되면 어느 종교를 믿겠느냐는 질문에 "천주교"라는 답이 월등히 많습니다. 천주교는 어지러운 세상의 희망이고, 그 어느 종교보다 깨끗하며 함께 하고 싶은 종교로 남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보이는 곳과 안 보이는 곳에서 열심히 빛과 소금 역할을 하는 신자들에 기인한 것입니다.
 평신도들의 구원이 이뤄지는 장은 몸담고 있는 가정과 직장, 그리고 세상 한복판입니다.

 평신도 주일을 지내면서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고유한 특징인 세상의 복음화에 앞장 서는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신앙 선조들처럼 여러분들의 삶이 비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현존을 알리는 표징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