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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르다고 벌써 가난을 잊었는가"

namsarang 2009. 11. 6. 21:00

"배부르다고 벌써 가난을 잊었는가"

 

'가난한 이들은 늘…' 펴낸 노동사목의 代父 도요안 신부
"참 행복에 이르는 길은 잘 먹고 잘 사는 길과 반대
자신을 비우고 가난해져야 하느님 사랑 품을 수 있어"

"한국은 이제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유해졌습니다. 그렇지만 부(富)의 즐거움에 지나치게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가난'에 관한 책을 썼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도요안(72) 신부가 최근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을 것이다》(가톨릭출판사)를 펴냈다. 도 신부는 한국 가톨릭에 '노동사목'을 도입한 선구자이다.

미국 출신인 도 신부는 살레시오회 소속으로 1959년 전후(戰後) 복구를 돕는 선교사로 방한해 광주 살레시오고에서 영어교사를 맡는 등 3년간 한국에서 일했다. 그 후 미국으로 갔던 그는 1968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평생을 보내고 있다.

도요안 신부는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씨의 분신사건 이듬해인 1971년 당시 교구장인 김수환 추기경의 지원으로 서울대교구에 노동사목위원회를 설립해 지금까지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돕는 일을 해오고 있다.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온 그가 새삼 '가난'을 주제로 책을 낸 것은 한국 사회가 가난을 쉽게 잊어가고 있다는 경계심에서다. 또한 가톨릭 교회가 사회에 얼마나 누룩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지 되돌아보려는 반성적 의미도 책 집필의 동기가 됐다고 했다.

도요안 신부는“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사는 것보다 우리 곁에 있는 어려운 이들을 도우면 참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 신부는 척추암을 앓아 목발을 짚고 있다./김한수 기자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얼마나 가난에 대해 많이 말씀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 낸 책 제목도 예수님 말씀입니다. 지금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가난한 사람들은 늘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책에서 도 신부는 우리가 가난한 이를 찾기 위해서는 "그저 눈을 뜨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는 "제가 사는 보문동 골목에도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작은 봉제공장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매일 아침저녁 동네를 산책하며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는 이들을 만나는 것 역시 그에게는 살아 있는 묵상이 된다.

책은 171쪽짜리 작은 분량이지만 성찰은 풍성하다. 신·구약 성경에 나오는 가난한 이에 대한 비유와 교훈, 마더 테레사 수녀와 아베 피에르 신부, 도로시 데이 등 가난한 이를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수십년 전 신학생 시절 아베 피에르 신부에게 들은 강의록을 꺼내 다시 뒤졌다고 한다.

그는 가난한 이를 돕는 데서 더 나아가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는 가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들을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 가난한 이를 돕고, 청빈(淸貧)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도 신부는 "참 행복을 얻기 위해"라고 말한다. "'참 행복'은 대부분의 사람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여기는 것과 반대입니다. 우리 자신을 비우고 가난해지면 정의로워지며, 그다음에야 비로소 마음을 열고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올 수 있습니다."

도요안 신부는 "50년 전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모두가 가난했지만 알뜰하게 아껴 쓰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다"며 "그런 자세를 되살려 소비하는 방향도 나라와 지구의 앞날을 깊이 생각하며 똑똑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다만 하느님의 풍성한 하사품을 관리하는 집사일 뿐입니다. 그 하사품을 너그럽고 기꺼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나눠야 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도요안 신부가 가난한 사람들을 왜 도와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김한수 기자 hansu@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