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주보

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namsarang 2009. 11. 22. 11:37

[280호] 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번호 : 261 | 전례력 : 그리스도 왕 대축일, 성서주간 | 글쓴이 : 8지구 교하 성당 주임 이재정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오늘은 교회 전례력으로 마지막 주일입니다. 교회는 매년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지내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우주의 왕이심을 고백합니다. ‘왕’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세상을 지배하는 모든 권한과 힘을 가진 사람?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의 마음대로 하는 사람? 말 한마디로 하고 싶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사람? 모든 이들로 하여금 그의 힘과 권세에 복종하도록 하는 사람? 과연 왕이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요즘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가 인기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즐겨보는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가 저에게 생각할거리를 자주 던져주기 때문입니다. 한 달 전쯤 방영분에서 덕만공주가 미실 새주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미실 새주처럼 훌륭한 지도자가 있는데 왜 진흥대제 이후에 신라가 발전하지 못하였습니까 ?” 이 질문에 미실 새주는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미실 새주도 마음 속으로 “정말 왜 그럴까 ?” 라는 의혹이 일어났는지도 모릅니다. 덕만공주가 답을 하더군요. “미실 새주는 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순간 미실 새주의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신라의 실질적인 왕은 미실 새주였습니다. 모든 권한과 힘을 가지고, 신라를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 하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자리에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미실 새주는 똑똑하고 애국심이 넘치는 나름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이런 미실 새주에게 덕만공주는 일침을 가합니다. “미실 새주는 왕이 아니기” 때문에 신라가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르게 해석하면, 미실 새주는 주인이란 의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미실 새주는 주인이 아니기에 나라의 발전보다는 개인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욕을 채우기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미실 새주가 그리 높은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모든 관심은 오로지 ‘나’에게만 있을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주인’이라면 ‘나’라는 틀에서 벗어나 ‘우리’를 위해 노력했을 것이겠지요. ‘우리’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고, 내어놓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왕이셨을까요? 덕만공주가 이야기하려는 진정한 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합니다. 당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우리 인간’ 모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는 삶을 사셨던 분,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것과 봉사라는 것 그리고 겸손과 화해를 보여주심으로써 참된 ‘왕’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됩니다.

 왕이 되려고 하려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한 왕은 그리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참된 왕의 모습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왕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왕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나’라는 틀에서 벗어나 ‘우리’라는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왕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이 십자가에서 비롯되었듯이 우리 또한 봉사와 섬김으로써 예수님의 왕다운 사명과 직분에 참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