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대림 3주일- 나는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namsarang 2009. 12. 13. 15:23

[생활 속의 복음]

대림 3주일- 나는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홍승모 신부(인천교구 강화본당 주임, 인천가톨릭대 교수)


   오늘 복음 말씀은 세례자 요한이 선포한 심판의 말씀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오는 군중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회개를 행실로 보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질 것이라고 권고합니다. 그러자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질문합니다.

 첫째, 군중입니다. 군중에게는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3,11)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분배의 정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로서의 형제애를 말합니다.

 어떤 형제들에게는 없고 나에게는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아버지께서 나에게 은총으로 주신 것이기에 나눌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주신 것을 형제들이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형제애에서 나오는 나눔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과 집착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세리들입니다. 세리들에게는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루카 3,13)고 말합니다. 세리는 이방인 취급을 받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는 선한 이와 악한 이가 따로 구분돼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완벽한 신앙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보다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완전한 것을 요구하지만,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스스로 느끼는 사람은 완벽하지 않더라도 자비를 베풀어 용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군사들입니다. 군사들에게는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루카 3, 14)하고 말합니다. 이것은 군대 조직과 같은 집단이나 게토화된 그룹 이름으로, 또는 자기들 이익을 위해 하느님이나 정의의 이름을 빌어 악을 행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형제애를 통한 나눔, 마음에 차지 않고 부족한 이들에게 베푸는 자비, 자기들만이라는 집단 이기심에서 벗어나 선행의 열매를 맺는 일이 바로 주님의 기다림을 준비하는 신앙인의 열매가 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열매를 맺기 위해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필리 4,6-7).

 우리가 청원하는 기도를 하느님께서는 꼭 들어 주십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마태 7,7-11).

 그러나 간절히 기도했지만 응답을 받지 못한 경우를 여러 번 경험하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위로를 해 봅니다. 나의 믿음이 약하구나, 또는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에서 옳지 않은 것을 바랬구나, 또는 내가 청한 것을 다른 방법으로 이미 주셨는데 나는 모르고 있구나, 또는 주님께서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으셨다면 어떤 깊은 속뜻이 있으시겠지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위로들이 주님께 청원한 기도가 응답을 받지 못한 이유를 명확히 설명해 주지는 못합니다.

 문제는 주님께 청원의 기도를 올렸다면, 그 기도가 실현되기 위해 '어떻게 했는가'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혼자 하는 독백이 아닙니다. 주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기도를 통해 청하는 바를 스스로도 책임을 지고 응답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이 있다면,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도와줘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주님께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람이 있다면 실제로 대화하고 용서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들끼리 만이라는 집단 이기심에서 벗어나도록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구체적으로 희생과 봉사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 오신다고 선포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이제 모든 것을 묻고 새로운 시기를 맞을 희망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살과 피를 지닌 사람이 되셨듯이, 우리도 우리가 드리는 기도에 살과 피를 담는 방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이것이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는 질문에 응답이 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