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모 신부(인천교구 강화본당 주임, 인천가톨릭대 교수)
오늘은 전례력으로 예수ㆍ마리아ㆍ요셉의 성가정 축일을 기념합니다. 성가정이란 말 그대로 나자렛의 거룩한 정신과 성덕으로 살아가는 가정공동체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의미를 지닌 성가정 축일 복음으로는 색다른 면이 나타납니다. 복음 내용을 보면,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예수님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나타납니다. 여기에 어떤 뜻이 담겨 있는걸까요? 마리아는 예수님이 없어진 줄 알고 사흘 동안 찾아다니다 결국에는 성전에서 찾게 됩니다. 마리아는 어머니로서 당연한 질문을 합니다.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루카 2,48).
마리아는 예수님의 행동에 질책 보다는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에 선입견을 갖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의 지평을 넓히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 드러나는 말이 바로 "네 아버지와 내가"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결정보다는 남편인 요셉을 더 우선시 하는 배려는 자녀에게도 해당됩니다. 이것이 바로 용서이며 사랑입니다. 이런 마리아의 안타까운 마음에 대해 예수님의 답변은 단호합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 이 말씀은 신앙을 깊이 성찰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를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은 성전뿐 아니라, 사랑의 움직임이 있는 곳 어디에나 현존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지만, 어머니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합니다. 가정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그 생명이 성장하는 울타리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삶을 통해 이뤄지는 교육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곳입니다.
가정에서 우리는 말하는 방식, 행동하는 방식, 대응하는 방식, 판단하는 방식, 올바로 살아가는 방식을 함께 익히게 됩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의미가 통하는 삶을 배우게 됩니다. 이것이 또 하나의 삶의 강생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빛과 어둠의 양극이 극단적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통합되기도 하는 공동체입니다.
복음에서 보듯이, 마리아의 아픔은 아들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드러납니다. 예수님 삶의 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 품에 안고만 살 수 없고 독립적인 삶을 이루기 위해 떠나보내야 하는 고통,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달리 바라보는 시각 차이에서 오는 고통, 이 모든 고통과 갈등을 체험하게 합니다.
가정에서도 구성원 사이에 똑같은 일이 발생합니다. 본당 공동체에서도, 특수사목 공동체에서도, 교구 공동체에서도 똑같은 일이 발생합니다. 이때 누가 아버지 요셉의 역할을 하며, 누가 어머니 마리아의 역할을 해야 합니까? 누가 책임을 갖고 잘잘못을 교육하고, 누가 사랑의 마음으로 보듬어 주어야 합니까? 빛과 어둠의 양극을 누가 통합해야 합니까? 채근담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집안사람들이 눈에 거슬리는 허물이 있다고 하여도 몹시 성내지 말 것이며, 또 가볍게 버리지 말 것이니, 봄바람이 얼었던 땅을 풀고 생명을 돋아나게 하듯, 부드러움과 인내심을 갖고 가정의 냉기를 녹이라. 이것이 가정의 규범이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콜로 3,13-15). 이 말씀은 가정 구성원들을 화해하고 일치시키는 용서와 사랑과 내적 평화가 누구에게 뿌리를 두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신뢰하며 주님이 주시는 용서와 사랑과 내적인 평화의 삶으로 빛과 어둠을 통합합니다.
그렇기에 나자렛 성가정은 세상을 위한 주님 사랑의 표지이며 성사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 자녀로서 우리는 본질적으로 주님에게 속하며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그 충만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바로 이것을 깨닫고 실현하신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런 마음은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을 주님을 향한 여정의 동반자로 바라보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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