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모 신부(인천교구 강화본당 주임, 인천가톨릭대교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탄생을 앞두고 이제 마지막 준비 기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다는 사랑의 역사 앞에서 가장 필요한 준비는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믿은 것처럼 말입니다.
복음에서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방문합니다. 하느님 말씀에 순명한 마리아를 통해, 하느님은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만나러 오십니다. 하느님은 나를 통해 또 다른 이웃을 만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은 기다림의 두 시대를 품고 있습니다. 엘리사벳의 태 안에서 성령으로 뛰놀던 아기가 바로 두 시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주님이 들어올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만남은 두 시대, 곧 구약과 신약의 시대가 서로 포옹하는 순간을 상징합니다. 기나긴 약속의 기다림 속에서 이제 그 기다림이 실현되고 완성되는 시대가 열리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엘리사벳의 말에 나타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엘리사벳의 말처럼, 마리아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님의 놀라운 일을 믿고 받아들입니다. 마리아는 평생토록 이런 믿음으로 주님을 마음에 받아들이십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믿었고 그래서 늘 자신을 비우고 포기하는 영성을 통해 주님을 맞이하십니다. 세상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찬 마음에는 주님이 현존할 수 없습니다.
무소유란 말이 있습니다.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무소유란 궁색하게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랍니다. 우리 내면에도 불필요한 것, 내버려야하고 끊어 버려야 할 습관이나 행동이 있다면, 그렇게 해서 주님이 들어오실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마음이 깨져야 합니다. 깨지고 부서질 때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우리는 생명의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어느 수도회에 교만한 젊은 수사가 있었답니다. 나이 많은 한 수사가 정원에서 흙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에게 그 젊은 수사가 다가옵니다. 경험 많은 수사는 후배 수사에게 충고해 주기 위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 단단한 흙 위에다 물을 좀 부어주겠나?" 젊은 수사가 물을 부었습니다. 그러나 물은 옆으로 다 흘러버리고 맙니다. 그러자 이 나이 많은 수사는 옆에 있는 망치를 들어 흙덩어리를 깨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부서진 흙을 모아놓고 젊은 수사에게 다시 한 번 물을 부어보라고 말합니다. 물은 잘 스며들었고 부서진 흙을 뭉쳐 가기 시작했습니다. 나이든 수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야 흙 속에 물이 잘 스며드는군. 여기에 씨가 뿌려진다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야. 우리 역시 깨어져야 하느님께서 거기에 물을 주시고, 그럴 때 씨가 떨어지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수 있는 거지. 우리 수도자들은 이것을 '깨어짐의 영성'이라고 얘기한다네."
주님이 들어오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자신의 것을 깨뜨리는 깨어짐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깨어짐은 더 좋은 길로 나아가기 위한 뿌리가 됩니다. 더 좋은 꽃을 피우기 위해 반드시 선행돼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마리아의 뜻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잉태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비우고 주님이 들어오실 공간을 마련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자신의 몸과 마음에 배어있고 스며들어 있는 불필요한 세상적인 것을 내놓고 말씀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변화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변화한다면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도 변화할 것입니다. 이것이 공명(共鳴)의 영성입니다. 진동수가 같다는 뜻입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고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마리아와 태중의 아기가 복되다는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주님의 성령이 내 안에 감추어진 같은 성령을 일깨운 것입니다. 우리 안에 내재된 성령을 일깨워야 우리가 몸담고 있는 가정과 일터를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주님은 세상 가치로 평가되는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기뻐하시기 보다는, 주님의 뜻을 일상생활에서 조금씩 이루어가는 변화된 자신과 변화된 이웃과 변화된 세상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히브 1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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