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모 신부(인천교구 강화본당 주임, 인천가톨릭대 교수)
늘 복음은 처음부터 그 당시 역사적 상황을 연대기적으로 상세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 십오년,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헤로데가 갈릴래아의 영주로, 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로, 리사니아스가 아빌레네의 영주로 있을 때, 또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루카 3,1-2).
이렇게 역사적 인물들을 정확히 언급하는 이유는 주님의 길을 준비했던 세례자 요한이 가상의 주인공이 아니라 역사 안에 살아있던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고 기다리는 주님도 살아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어 높은 산과 오래된 언덕은 낮아지고 골짜기는 메워져 평지가 된다는 바룩서(바룩 5,7)의 말씀과 비슷한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이사 40,3-5)이 인용됩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루카 3,4-6).
주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낮게 하고 굽은 길은 곧게 하고 거친 길을 평탄하게 하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어느 영성가는 이 말씀을 우리 내면의 상태와 비교해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곧 골짜기는 인간관계에서 상처로 인해 깊숙이 패인 마음은 아닌지, 산과 언덕은 끝닿은 줄 모르고 높이 솟은 교만한 마음은 아닌지, 굽은 길은 말을 왜곡되게 받아들이는 비뚤어진 마음은 아닌지, 거친 길은 주변에 개의치 않고 앞만 보고 내달리는 고집스런 마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자신의 상처 받은 마음, 교만한 마음, 비뚤어진 마음, 고집스런 마음을 메우고 낮게 하고 곧아지게 하고 평탄하게 만들어야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 더 풍부해져,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의로움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필리 1,9-11).
기도를 통해 주님을 체험하고 영적 식별력을 키우는 작업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주님과의 끊임없는 만남이 우리 자신을 치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작업은 순간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 작업은 마치 김치를 담그는 작업과 같습니다. 김치를 담그는데 빼놓으면 안 될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소금과 김칫독입니다. 배추가 김치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소금간이 배추 속으로 들어가 뻣뻣한 배추의 원래 모습이 사라져 숨이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김칫독은 양념을 품고 있는 배추를 끝까지 보듬고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소금은 주님 말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소금인 주님 말씀이 우리 몸에 들어와야만 교만하고 뻣뻣한 이기적인 우리 모습이 죽고 인간 본래의 맛이 향기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김칫독이 배추를 품듯이, 주님이 우리를 품을 수 있도록 자신을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겉절이가 아니라 향기 그윽한 오래된 묵은지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묵은지는 믿고 기다린 숙성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성숙의 시간을 갖고 상처 받은 마음을 주님 자비의 마음으로 메우고, 교만한 마음을 겸손한 마음으로 낮추고, 비뚤어진 마음을 순수한 마음으로 곧게 하고, 고집스런 마음을 의지하고 내맡길 수 있는 평온한 마음으로 바꿔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삶에 놀랍고 좋은 변화가 점차 일어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좋은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필리 1,6).
우리를 위해 좋은 일을 시작하신 분이 좋은 결과를 주신다는 믿음이 바로 우리 희망이자 기다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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