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사랑이 활짝 피어났어요

namsarang 2009. 12. 27. 15:51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사랑이 활짝 피어났어요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 돌보던 라란호씨, 새 보금자리 마련하고 영어강사로도 활동

"나눔이 있는 곳에 사랑이, 사랑이 있는 곳에 나눔이…"
 평화신문이 9년째 이어가고 있는 사랑의 릴레리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답지한 독자들 정성이 세밑 사람들의 언 마음을 녹이는 훈훈한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

 사연에 소개된 주인공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받은 작은 정성으로 자신의 삶을 되찾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받은 사랑을 다시 나눔으로써 되갚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고 싶다"는 필리핀 이주여성 글렌다 라란호씨와 "하느님 덕분에 살았으니 저보다 더 아프고 어려운 이에게 하느님을 알려야 겠다"는 신덕선씨를 만났다.
 
 
(1) "값진 사랑,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주고파
 
   서울 광진구 중곡동 한 어린이집.영어강사 글렌다 라란호(34)씨가 울상인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물었다.
  
   "Are you sad?"(여러분 슬픈가요?)
 
   "No~!"(아니요)
 
   행복한 표정으로 바꿔 다시 물었다.
 
   "Are you happy?"(여러분 행복하세요)
 
   "Yes"(네~)
 
   그리고 신나는 음악에 맞춰 이리쿵 저리쿵 어린이들과 어울려 영어 노래를 부르며 교실을 한 바퀴 돈다. 유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다보니 수업 중 가만히 앉아서 가르칠 수가 없다. 대부분 발을 쿵쿵거리거나 서로 잡으러 다니는 게임이다. 1시간만 수업을 해도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아이들과 즐겁게 뛰어노는 라란호씨 얼굴에는 2년 전의 슬픈 표정이 걷혔다. 어린이들에게 질문을 했듯 그도 이제는 행복하냐는 물음에 "Yes"(네)라고 수줍게 답한다.
 
   7년전 필리핀을 떠나 한국인 남자와 결혼해 가정을 꾸민 그는 지금까지 봉제공장에서 재봉일을 해왔다. 그는 머무를 곳이 없어 친구 월세방에서 함께 생활했다. 당시 남편은 뇌출혈로 쓰러져 시어머니가 남편을 수발해야 했다.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당시 네살배기 아들은 필리핀에 있는 친정 어머니에게 맡겼다.
 
   이런 그의 사연이 2년전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소개(2007년 8월 5일자, 931호)됐고 독장에게 1200만원 가량의 성금이 들어왔다. 라란호씨는 이 돈으로 방 2개짜리 월세방을 구했다. 그리고 함께 살았던 친구와 새집으로 이사를 왔다.
 
   "제 인생이 100% 바뀌었습니다. 수업을 신나게 해야햇 피곤하기도 하고 수업준비로 힘들지만 그래도 기쁩니다. 도와주신 평화신문 독자들을 찾아다니며 갚을 수 없어 (제자리에서) 영어강사로 많이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한국 어린이들에게 영어가 많이 필요한 시간이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라란호씨는 지난 3월 한국인 친구 소개로 튼튼영어 강사로 일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5군데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방문하여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서울 자양동 집에서 유치원이 너무 멀어 이동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그래도 그는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봉제공장에서 밤낮으로 일해 버는 돈은 50만원이 겨우 넘었다.
 
   남편 건강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데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남편과 떨어져 살고 있다. 아들은 필리핀에서 라란호씨가 보내주는 돈으로 유치원을 다니고 있다. 라란호씨는 가끔 여유가 생길 때 부모님 생활비도 몇만원씩 보내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6살된 아들이 친정 언니와 함께 한국에 다녀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린이 대공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라란호씨는 앞으로 집안 사정이 어려워 영어를 배우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가르쳐 주고 싶다"면서 도움을 준 독자들에게 성탄 인사와 함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2) 건강과 신앙 얻은 신덕선씨- 너무 행복해 감사 기도가 절로 나와요

 




 "하느님을 알고부터 행복이 시작됐지요. 평화신문 독자분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지금 너무 행복해서 감사 기도가 절로 나와요. 허허~"
 
 그가 활짝 웃었다. 평화신문 제1012호(3월 29일 자)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사연의 주인공 신덕선(예비신자, 73, 서울 삼성동본당)씨는 9개월 전 첫 만남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오랜 투병생활에 찌든 얼굴, 어딘가 차갑게 보이던 찌푸린 인상이 아니었다. 그의 너털웃음이 낯설면서 반갑기 그지없다.
 
 '사랑이…'에 소개될 때만 해도 그는 9년간 만성신부전증으로 혈액 투석을 받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위암까지 걸려 삶의 희망이라곤 찾을 수 없는 절망의 상황이었다.
 
 요즘 그는 성탄절에 '요엘'이라는 세례명으로 하느님 자녀가 될 예비신자로 변해 있었다. 평화신문 독자들이 전한 사랑이 그에게 병마와 싸울 용기를 줬고, 삶의 의지를 선물했다.
 
 "어렵게 사는 형편에 돈이 많이 드는 각종 검사는 거르기 일쑤였어요.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하며 체념하곤 했는데, 성금은 든든한 삶의 원군이었지요. 그리고 하느님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이번에 세례를 받게 된 것은 그의 사연을 평화신문에 제보한 삼성동본당 빈첸시오회 임만택(제노) 부회장과 부인 강구옥(제르트루다, 2구역 6반) 반장의 노력 덕분이다. 부인 강 반장은 거동이 불편한 신씨를 교리가 있을 때마다 성당에 모시고 다녔다.
 
 부부의 이런 노력에 감동한 신씨는 자신을 도와준 임 부회장을 대부로 정했다. 신씨는 돌아온 아들(루카 15,11-32)처럼 인생 황혼기에 하느님 자녀로 태어나게 됐다.
 
 "저 때문에 빚쟁이한테 시달려온 데다 제 병시중을 오래 들면서 고생한 아내에게 감사 기도를 올려요. 기도문도 암기할 겸이요. 그러면 아내는 곁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다고 해요. 제가 너무나 달라졌다고요. 아내도 곧 신자가 되겠죠. 허허"
 
 그는 젊은 시절엔 교편을 잡았고, 한 때 국회의장 비서까지 지내며 승승장구했다. 대기업 임원에서 사업가로 남들이 우러러보는 위치에 올라 더 큰 '성공'을 쫓았다.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달콤해 보이는 성공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 성공했다고 느끼는 순간, 더 큰 성공에 대한 욕심이 그의 마음을 옥죄어왔고, 결국 삶의 독이 됐다.
 
 사업 확장을 위해 사채를 마구 끌어다 쓴 것이 화근이 돼 빚쟁이들에게 쫓기면서 건강도 급속도로 나빠졌다. 빚을 못 갚아 옥살이하기도 했다. 빚의 불똥이 자녀와 친지들에게까지 떨어져 자녀는 국외로 도피해버렸다. 벌써 10년도 넘게 연락이 닿질 않는다.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그가 미래의 대부를 만났고, 대부 덕분에 평화신문 '사랑이…'에 답지한 독자들 정성이 더해져 하느님 자녀가 됐다. 사랑의 꽃이 활짝 피어 결실을 얻은 것이다.
 
 "삶의 희망을 얻으니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생겼습니다. 9년 동안 혈액투석을 받다 보니 병원에서 알게 된 친한 환우가 많아요. 그들에게 하느님을 전하고 싶어요. 하느님 덕분에 살았으니 이젠 저보다 더 아프고 어려운 이에게 사랑이신 하느님을 알려야죠. 이것도 욕심인가요? 허허~"

                                                                                             이힘 기자 lensman@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