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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대학 원서를 쓴 아들 진범군의 표정은 어둡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때 남들 다 가는 학원 한 번 보내지 못한 것도 마음이 아픈데 대학 입학금조차 마련해줄 수 없는 구씨는 가슴이 미어진다. |
넉넉하진 않았지만 사업을 하는 남편과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리며 살아온 구경자(세레나, 47, 수원 영통영덕본당)씨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1998년 IMF가 터지면서였다. 사업이 급격히 기울면서 남편은 심각한 우울증을 앓으며 몸져누웠다. 2년간 남편 병수발을 하면서 재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집도 잃었다. 남편은 아내와 당시 초등학생이던 김진범(베드로, 18), 혜민(베로니카, 16) 남매를 남겨두고 2000년 세상을 떠났다. 구씨는 지난 9년 동안 억척스럽게 일하며 남매를 키웠다. 노점상, 대리운전 기사 등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여전히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너무 힘들고 몸까지 아파올 때면 나쁜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이를 생각하며 견뎌냈다. 7년 전 한 물류센터에 일자리를 구했다. 일은 고됐지만 고정 수입이 생겨 생활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돈이 들어갈 일이 늘어나자 구씨는 3년 전부터 남들보다 두 배로 일했다. 아침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쉬지 않고 수백 개의 상자를 날랐다. 늦은 시간 집에 오면 밀린 빨래와 설거지를 하고 아침에는 아이들 밥을 챙겼다. 지난 3년 동안 수면시간은 하루 2~3시간에 불과했다. 구씨의 노력 덕에 세 식구가 20만 원짜리 사글셋방에서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다. 그 고된 생활을 2년 넘게 하자 몸에 이상이 느껴졌다. 2008년에는 자궁에 혹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 지난해 초부터는 팔과 손목에 종종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손목 수술을 받게 되면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 아픔을 참고 일했다. 하지만 도저히 수술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달 초 아이들 아침밥상을 차리다가 자신도 모르게 그릇을 떨어뜨린 것이다. 손에 감각이 없어져 물건을 제대로 집을 수도 없었다. 수원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병원 사회사업팀 도움으로 수술비 부담은 덜었는데 앞으로 살아갈 일이 걱정이다. 지금까지 해오던 물류센터 일이 힘들게 됐다. 하루에 수백 ㎏의 물건을 옮겨야 하는데 지금 손목 상태로 일을 했다가는 더 악화될 게 불 보듯 뻔하다. 더 이상 육체노동은 무리다. 현재 휴가 중인 구씨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이제 집에 돈을 벌 사람이 없다. 성빈센트병원 사회사업팀장 차화옥(율리에타) 수녀는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구씨에게 평화신문 독자분들이 조금씩만 도움을 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관심을 호소했다. 구씨 손목에는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선명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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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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