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고가는 진실한 대화 선교의 꽃이 피어난다
정해진 일과를 살아가는 사제로서의 삶은 큰 일이 없는 한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는 늘 정해진 일을 하기 마련이다. 일상생활 가운데서도 되도록 지키려고 애쓰는 것은 한 주일에 한번 점심 식사 후 남산 산책이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친구와 남산에 한 걸음씩 오르면 어느새 '서울에 이런 녹색이 있었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그러면서 분주했던 하루 일들이 마음 속에서 정리되기 시작한다.
도시의 딱딱함에서 벗어나 푸른 나무와 부드러운 흙을 접할 때 마음이 편안해지게끔 되어 있나보다. 나는 새로운 곳에 발령받아 갈 때마다 저녁 산책을 하기 위해 근처 자연 공간에 먼저 마음을 쓴다. 성산동성당 근처 성미산, 이탈리아 유학 시절 로마 빌라 보르게제(Villa Borghese), 청담본당 시절 청담공원, 혜화동 교리신학원 때 와룡공원…. 언제나 한결 같은 모습으로 나를 말없이 반겨주는 나무들에게서 또 다시 하느님을 느끼고, 계절 맞춰 피어나는 꽃은 내 마음을 기쁘게 해준다.
크지도 높지도 않은 산이건만 남산 산책과 거기 동반하는 친구가 있어 나의 명동 생활은 매 주일 쉼표를 찍을 수 있다. 동료 신부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자들 이야기, 세상 이야기 등을 하다보면 어느새 남산 산책로 끝에 다다른다. 그러다 보면 친구의 마음도 알게 되고, 지금의 나의 삶도 솔직하게 나누게 된다. 산책하면서 우리는 영성 상담을 하게 되는 영적 갈증의 시원함을 체감한다.
어찌 보면 자연에서 주는 신선한 공기와 녹색 에너지보다는 이렇게 자연에서 동료와 산책하며 나누는 시간이 우리 사제들 삶에서 매우 중요한 시간일 수 있다.
대화는 상대방 마음을 알고 나누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이 대화가 이성적이고 누가 옳고 그른 지 따지는 그런 것이 돼서는 안 된다. 솔직한 감정을 전하고 그것을 받아 주는 재치야 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대화 기술이다.
선교 방법으로서 사람들을 입교시키는 대화는 사실상 어떤 목적을 갖는다. 전단지를 접하는 것 같은 강요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전교 목적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절대로 일방적이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 녹색의 자연에서 나누는 동료들과의 대화처럼 솔직하고 담백하게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 존중하고, 하느님 존재와 사랑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의 분위기와 환경이 중요하며, 그 모든 것에 앞서 자신부터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자로서의 결심과 함께 마음의 문을 여는 개방된 자세가 필요하다.
세상 사람들이 나누고자 하는 것은 영적인 것보다 현세적인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선교사인 신앙인들은 진리와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과 함께, 이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도록 대화의 차원을 높여야 한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했던 대화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 타종교인들 혹은 무종교인들에게 참 진리인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하겠다. 대화는 가식이나 편견 없이 진실과 겸손으로 솔직하게 하며 대화가 서로를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할 것이다. 여기에는 원칙의 포기나 거짓 평화주의를 배제하고, 오히려 종교적 탐구나 체험을 함께 한다는 것을 증거하여야 한다.(「교회 선교 사명」 56)
양해룡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선교ㆍ전례사목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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