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5) 구세주 그리스도에 관한 첫 선포의 길

namsarang 2010. 1. 30. 15:18

[선교 할 수 있을까?]

 

(5) 구세주 그리스도에 관한 첫 선포의 길


사랑으로 초대하는 선교 강압적 권유보다 강하다

  1995년 7월 혜화동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아버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무척 궁금했다. 사제를 아들로 둔 아버지는 신앙생활을 아주 열심히 하는 신자라고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내가 부제품을 받을 때 세례를 받은 늦깎이 신자다.

 나는, 결혼 전부터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 영향을 많이 받고 신앙생활을 했다. 어려서 유아세례를 받고, 줄곧 성당 주일학교를 다니며, 성당 마당에서 뛰어 놀았다. 그렇게 성장한 내가 성소의 뜻을 둔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방학을 맞아 성당에 나온 신학생들 모습을 본 후, 성가소비녀회의 예비신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공부를 잘했고 사제가 된다는 생각을 깊이 해 본적은 없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내 생각은 변해갔고, 하느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점점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신학교에 들어가게 됐다. 그 누구의 권유나 강요도 아닌,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나 스스로의 응답이었다. 고맙게도 부모님께서는 내 의사를 존중해 주셨다.

 그러나 내가 신학교에 다닐 때에도 아버지는 신자가 아니셨다. 나는 아버지가 세례 받으시기를 부탁하거나 강요하지 않았다. 마음으로야 왜 원하지 않았겠는가. '언젠가는 그 날이 반드시 올거야. 아버지가 성당에 나오실 거야'라고 굳게 믿었고, 아버지께 직접 말하지 않는 대신 기도로 하느님께 청하기만 했다.

 그러던 중, 내가 부제품을 받기 바로 전, 드디어 아버지께서 당신 스스로 입교를 결정하시고 매주 성당에 나오기 시작하셨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같은 본당 출신인 동창 신부의 아버지와 함께 성당 다니시는 특별한 즐거움까지 하느님으로부터 세례 선물로 받으셨다.

 이웃을 하느님 사랑 안으로 초대하는 선교는 그 이웃의 마음을 진심으로 움직일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해진다. 자녀, 배우자, 친형제, 자매 아니 부모라 할지라도 우리는 강압적 권유나 반복되는 말만으로는 그 사람을 하느님 곁으로 불러올 수 없다. 서로의 마음이 오갈 때, 그리고 그 이웃의 마음속에 하느님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자라남을 따뜻한 눈으로 한결같이 지켜봐주고 기도하며 기다릴 때 비로소 참된 가톨릭 신자가, 세례 받고 금방 '쉬는 교우'가 아닌 진정한 하느님 자녀가 새롭게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신학생인 내가 아버지 세례를 위해 기도하며 기다리고 기쁨이 충만한 삶을 보여드린 것처럼, 선교는 청중의 상황과 언어와 감정에 맞는 선포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너무 급하게 입교 숫자에 연연한 선교가 아니라, 한명이라도 참된 가톨릭 신자가 될 수 있는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선포자로서 선교사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할 것이다.

 선교사는 자신과 복음을 듣는 청중 사이에 작용하시는 성령을 믿고, 그 성령에 따라 청중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 또 청중의 마음과 생각을 읽는 복음 선포는 인내심을 갖고 그들의 상황에 맞게 선포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구원과 해방… 이 소식은 그것을 듣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태도로써 또 확실하고 구체적이고 상황에 맞는 언어로써 선포되어야 한다. (「교회 선교 사명」 44)


                                                             양해룡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선교, 전례사목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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