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모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오늘 우리는 루카 복음의 서문과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하신 공생활 시작의 첫 연설을 듣습니다.
서문에 나오는 테오필로스라는 이름은 상징적 이름입니다. 테오필로스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루카 복음 저자는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이 체험한 예수님에 관한 일들이 모두 진실임을 선포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증언이 필요한 이유는 사실 복음서가 기록되기까지는 일정한 단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 사도들의 복음 선포, 그리고 구두전승에서 기록단계라는 3가지 단계가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의 생애와 복음이 기록된 사이에는 30~60년이라는 긴 시차가 존재합니다. 더욱이 예수님이 직접 남기신 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이 체험한 일들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기록하고 증언할 필요가 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록들을 역사적으로 입증할 만한 객관성을 찾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시각의 전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그분의 놀라운 일들을 단순히 역사적 검증으로만 찾으려 애쓴다면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역사 안에서 검증되고 비춰진 인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 역사 자체를 창조하고 창조된 역사 안에서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이라는 사실을 믿는데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찾으려 한다면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믿음의 영적인 성장을 통해 새로운 눈으로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나자렛 회당에서 일어난 일이 이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바로 이사야 예언자 말씀을 인용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인용된 이사야서 61장 1-2절과는 다른 내용이 더 첨가돼 있습니다. 그것은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눈먼 이들이 다시 본다는 의미는 어쩌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하느님과 인간과 관계를 고립시키는 눈먼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은 아닌지 묵상해야 합니다.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거기에 눈먼 이들은 모든 것을 자신의 입맛과 감성에 따라 설정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다양성을 인정 못하고, 오히려 생각이 다르면 틀리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고 선포하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포된 말씀이 성취되고 실현됐다고 말할 수 있는 분은 이 세상에 오직 한 분뿐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창조하시는 바로 주님이시라는 뜻입니다. 몸은 하나지만 많은 지체로 되어 있듯이 우리 모두는 세례를 통해 한 성령으로 태어나 그리스도의 같은 몸을 이루는 지체들인 것입니다(1코린 12,12-14). 우리는 다양한 지체를 구성하지만 주님 안에 하나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고유한 성격, 생각, 습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각 지체들이 서로 분열되지 않고 동등하게 돌보게 하십니다.
그 방법은 단순합니다. 주님은 가장 모자란 지체를 더 돌보시고 더 큰 영예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하게 하신 것입니다(1코린 12,24-25).
이것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의 사랑에 영적인 새로운 눈을 떠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생의 모습은 현저히 달라진다고 합니다. 겸손한 사랑과 믿음을 갖고 옳은 방향을 바라보면, 의외로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낮도 필요하지만 밤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밤은 일하지 않기에 비생산적인 때가 아니라, 오히려 낮에 일할 수 있는 동력을 저축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혹시 자신이 눈먼 여정을 걸어왔다고 느낀다면, 이제 눈멀었던 인생의 밤은 새로운 삶을 위한 밑그림을 그렸던 때라고 생각하고, 모자란 지체를 더 크게 돌보시고 새롭게 눈을 뜨도록 이끄시는 주님께 은총을 청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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