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모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오늘 복음은 주님의 영광스런 변모에 대해 전해줍니다. 주님의 영광스런 변모의 의미를 묵상하기 위한 출발점은 십자가입니다. 왜냐면 복음서에는 이 장면이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는 주님의 십자가 말씀 후에 항상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주님과 함께 십자가 여정을 걸어가야 주님의 거룩한 현존을 체험할 수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는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주님 영광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입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바오로 사도 말씀에서도 이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자주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키실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필리 3,18-21).
십자가 여정은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의지를 거슬러서 주님의 뜻을 매일 매일 가까이 따르려는 삶입니다. 거룩한 변모에 함께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도 이 말씀의 의미를 밝혀줍니다. 바로 십자가 여정에 동참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누리게 될 영광만을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은 고통과 죽음이라는 십자가 여정을 걸어가야 한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하고 기대했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당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제자들이 의심과 불안을 떨쳐버리고 왜 주님을 믿어야 하는지를 체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35).
주님 말씀을 듣고 믿는다면, 우리는 주님이 누구이신지 알게 되고 모든 의혹과 불안을 떨쳐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 말씀은 우리를 영적 정상에 서게 하고, 이제 저 세상 밑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더 큰 차원에서 명확하게 바라보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산에서 주님의 위대함을 목격했던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에게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서 날이 밝아 오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어둠 속에서 비치는 불빛을 바라보듯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2베드 1,19). 주님 말씀에 애써 귀를 기울이려는 삶, 이것이 십자가 여정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주님의 빛이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어두움과 불안을 밝혀줄 것입니다. 주님 현존은 우리 내면을 기쁨과 환희로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주님에게 선택받고 사랑받는 자녀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삶 속에서 불안과 절망이라는 유혹의 손길을 경험하곤 합니다(창세 15,12). 그러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가장 위대하고 거룩한 분께 선택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체험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간직해야 할 결정적 희망입니다.
이런 희망을 세상 속에서 끝을 모르고 추구하는 자신의 인간적 욕망으로만 채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기 위해 서슴없이 자행되는 모든 어두움의 행위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주님 마음에 또 다른 상처를 새기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삶과 철저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변화의 핵심은 주님께 매달리는데 있습니다.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긴 여정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엘리야도 모세도 심지어 제자들도 주님의 부르심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고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총을 알게 됩니다. 주님은 어둠이 밝아 오고 새벽의 찬란한 빛이 비출 때까지, 당신을 믿고 의탁하고 내맡기며 변화돼가는 우리 모습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뒤에 감춰진 주님 본연의 모습을 보기 원한다면, 우리의 나약한 의지, 부끄러운 행위들, 숨기고 싶은 욕망들을 주님께 내맡기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타볼산에서 제자들이 느꼈던 행복의 순간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행복의 순간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더 큰 영광과 기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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