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4주일-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

namsarang 2010. 3. 14. 15:15

[생활 속의 복음]

 

사순 제4주일-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


                                                                                                                                                           홍승모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가르쳐 주는 복음 말씀 중에, 되찾은 아들의 비유만큼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을 이렇게 잘 표현한 복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되찾은 아들의 비유는 복음의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사순시기에 이 복음을 읽는 이유는 사순시기가 자신의 죄를 성찰하는 회개를 넘어서 주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총을 체험하는 시기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는 주님과 어떤 관계를 갖고 살고 있습니까? 모든 일에 대해 자신의 능력만 믿고 자신의 윤리적, 종교적 완전성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큰아들의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좌절과 실패를 거듭하고서야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탐욕을 깨닫고, 결국은 주님 은총과 자비에 기대는 작은 아들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큰아들은 자신이 매우 가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작은아들은 되풀이 되는 악순환의 굴레에서 자신의 죄를 통해 오히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이 두 아들 중에 주님 사랑을 더 깊이 체험한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어쩌면 이 두 아들은 삶의 여정을 바라보는 우리 안에 내재된 두 가지 삶의 양식이 아닌지 성찰해 봐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눠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루카 15,11-13).

 작은아들은 아버지가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돌아올 몫을 챙겨 자신이 누리고 싶은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그러나 그가 바랐던 행복은 기대만큼 오래 가지 않습니다. 방종한 그의 생활은 그를 가장 낮은 삶의 처지로 몰락시키고 맙니다. 작은아들은 하도 배가 고파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고 복음은 전합니다(루카 15,16).

 작은아들은 짐승 취급을 받는 처참한 상황까지 치달은 것도 괴롭지만, 그 보다 더 고통스런 일은 짐승이 먹는 그 가치 없는 것마저도 주지 않는 인간에 대한 신뢰에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그제야 정신이 든 작은아들은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고 삶에서 잊었던 아버지를 기억하게 됩니다.
 그래서 작은아들은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돌아갑니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루카 15,20).
 작은아들은 아버지를 잊고 살았지만 아버지는 그를 바로 마중 나올 정도로 늘 그를 기억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상황은 자녀를 향한 부모의 일관되고 염려하는 사랑의 마음을 표현한 의려지정(倚閭之精)이란 고사성어를 생각나게 합니다.

 기댄다는 뜻의 '의'와 리마다 세운 문을 뜻하는 '려'를 사용해 부모의 정이란 대문에 기대서서 기다린다는 뜻에 비유하는 말입니다. 중국에 왕손가라는 사람의 어머니가 자식을 몹시 걱정하며 사랑하여 "네가 아침에 나가 늦게 돌아올 때면 나는 대문에 기대 네가 돌아오는지 바라보았고, 네가 저녁에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마을 문 앞에 기대서서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는 말에서 연유된 고사성어입니다.

 주님이 죄인들과 식사를 함께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은 아버지 하느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 분이신지를 직접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유혹에서 얼마나 허우적대는지를 아시면서도 진정한 삶의 희망과 행복을 주시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큰아들은 분개합니다(루카 15,29-30). 큰아들은 자비를 향한 연민보다는, 절제되고 통제된 삶속에서 사회적 체면과 의무감으로 살아 온 우리 마음의 내면을 드러냅니다. 그런 마음으로 모든 이를 판단한다면 다시 찾은 삶의 행복을 맛보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주님의 깊은 사랑과 자비로운 넓은 마음을 체험하려면 우리는 아버지의 말을 두고두고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바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그 사람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루카 15,3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