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5주일-우리, 주님의 사랑받는 존재

namsarang 2010. 3. 21. 14:18

[생활 속의 복음]

 

사순 제5주일-우리, 주님의 사랑받는 존재


                                                                                                                                                                 홍승모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


   우리는 어느덧 사순시기의 끝에 와 있습니다. 오늘 복음인 '간음하다 잡힌 여자' 이야기는 죄와 그 죄를 지은 죄인을 향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를 단순히 알려주는 것만은 아닙니다. 사순시기의 끝에 우리가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해야 할 것은 죄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한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그 여자의 인격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대중들이 보는 앞에서 그 여자를 끌고나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고 주님께 질문합니다. 그들은 모세 율법에 따라 돌을 던져 죽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님의 생각을 떠봅니다.

 그들이 신명기 22장 22-24절과 레위기 20장 10절에 언급된 율법규정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 규정에 따르면, 혼인 계약을 맺은 어떤 남자나 여자가 다른 남자나 여자와 동침할 경우, 두 사람을 다 그 성읍 성문으로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여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간음하다 잡힌 여자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옭아맬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 의도는 주님을 이중 굴레라는 올가미에 가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모세 율법을 적용할 것인가 아니면 당신이 이제까지 선포하신 사랑과 자비를 적용할 것인가 하는 갈등에 빠트린 것입니다.

 죽이지 말고 용서하라고 하면 율법을 거스르는 결과가 될 것이고, 자비를 베풀지 말고 죽이라고 하면 하느님 사랑과 자비의 가르침을 뒤흔드는 모순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중 굴레에 빠트려 주님을 고소할 근거를 찾으려 한 것입니다.

 복음 저자 요한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핵심 내용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죄란 우리 가운데 와 계신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믿으려 하지 않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과 다를 바 없이 우리가 움켜쥐고 싶은 삶의 조건들에 주님을 옭아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십니다. 주님의 이런 행동은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스라엘의 희망이신 주님 당신을 저버린 자는 누구나 수치를 당하고 당신에게서 돌아선 자는 땅에 새겨지리이다. 그들이 생수의 원천이신 주님을 버린 탓입니다"(예레 17,13).

 땅에 새겨진다는 말씀은 바로 오래가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곧 죄를 고발한 사람도 진정한 죄가 무엇인지 깨닫고 주님께 돌아서지 않으면, 결국 흙에 새겨져 바람이 불면 먼지처럼 사라지고 말 운명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물음은 바로 나 자신은 죄에서 자유로운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명령하십니다. 주님은 죄인을 고발한 사람들에 대해 자신의 행동을 책임질 수 있는지 반문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양심을 비추어 보라고 요청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고 복음은 증언합니다.
 
 신앙의 삶이란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습니다. 어떤 때는 고요하게 항해하지만 거센 시련의 폭풍우가 몰아치면 이내 위험에 빠지곤 합니다. 바다는 매우 광활하고 그에 비해 내 배는 너무 작기 때문입니다. 이런 순간에는 우리 내면에 있던 불안과 근심과 고통이 고개를 쳐듭니다.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상황에 마주한 것입니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것인가? 불안과 고통은 늘 주님을 향한 회의적인 마음과 불신앙을 초래합니다. 세상을 향해 아니면 주님께, 바로 이것이 우리 신앙의 깊이를 드러나게 합니다.

 이제 여인을 단죄하던 모든 이들이 떠나고 그 여인은 주님과 단 둘이 대면하게 됩니다. 자비를 입은 사람과 자비를 베푼 사람이 침묵 속에서 함께 일치되는 순간입니다. 우리 죄를 사랑과 연민의 정으로 짊어지신 십자가 주님이 앞에 계신 것입니다. 겉으로나 내면으로나 잘 바뀌지 않는 우리 모습에도 그 모든 것을 품어주시는 아버지가 계신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권고하십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우리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가장 소중한 것까지도 내어주시는 주님의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여기에 어떤 예외도 없습니다. 다만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자신이 용서가 필요 없는 완벽한 신앙인이라고 느끼는 것, 이것이 바로 죄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