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3주일- 하느님 나라의 누룩이 돼야

namsarang 2010. 3. 7. 14:59

[생활 속의 복음]

 

사순 제3주일- 하느님 나라의 누룩이 돼야

                                                                                            
                                                                                     홍승모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오늘 복음은 빌라도의 박해로 살해당한 사람들 이야기와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져 깔려 죽은 사람들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하나는 인간의 악의로 인해 발생한 살해 사건이지만, 다른 하나는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우연한 사고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이야기의 공통 주제는 죽음입니다. 죽음은 죄인이건 아니건 모든 이들에게 갑자기 들이닥친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 두 사건이 신앙인들의 믿음을 동요시킨다는 사실입니다. 곧 신앙인들은 이런 일들을 주님과 연관 지어 생각하면서, 과연 주님이 이런 일이 일어나게 허락하신 것인가 아니면 방관하시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역사 속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의인들 죽음과 무죄한 이들 고통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주님이 허락하신 것인지, 또는 악의 뿌리와 관련이 있는 것인지 명확하게 논리적으로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은 일시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 곁에서 계속 되는 문제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 신앙에 의혹과 시련을 가져오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런 유혹과 시련이 교차하는 세상에 주님이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깥에서만 구경하듯이 세상을 바라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이 세상에 얽혀 깊숙이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그 땅에서 저 좋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탈출 3,7-8).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진정한 이유는 이런 사건들 속에서 두려움과 불안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바꿔 희망을 갖고 살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악은 우리에게 죄를 인식시켜 우리를 의혹과 저항과 시련 속에서 지배합니다. 그래서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주눅 들어 하는 종으로 만들어 버리지만, 주님은 우리를 희망과 자유의 종으로 변화시킵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어 우리를 심판하시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가 많아진 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다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당신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로마 5,20).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는 말(루카 13,6)은 바로 주님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이끄신 것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자유를 향해 새로운 출애굽의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곧 주님의 백성은 이제 새로운 열매를 맺는 회개의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회개의 삶은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삶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도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2베드 3,8-9).

 회개는 의무가 아니라 하나의 가능성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 삶과 함께 얽혀계신 주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리사이와 같은 위선의 누룩(루카 12,1)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누룩(루카 13,21)이 되도록 변화돼야 합니다. 위선의 누룩은 교만과 탐욕의 힘으로 삶을 지배하려 하지만, 하느님 나라의 누룩은 겸손과 빈 마음으로 오히려 남을 섬기게 합니다. 위선의 누룩은 인간을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 마음 속에 가둬 결국 죽음으로 밀어 떨어뜨리지만, 하느님 나라의 누룩은 인간 마음을 사랑으로 열게 하여 생명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 나라의 누룩을 이렇게 비유해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자만은 좋지 않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1코린 5,6-8).

 하느님 나라의 누룩과 같은 삶은 모든 이에게는 생명의 빵이 되지만, 자신은 잃고 사라지는 음식의 소금 같은 삶일 것입니다. 이것이 축제를 기다리며 보내는 사순시기의 영적 양식과 영적 음료가 되도록 묵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