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룡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선교,전례사목부 담당)
본당 보좌 신부로 있을 때다. 본당 신자는 8000명 정도였고, 신부님 세분이 사목했다. 우리 사목자들은 여름에 신자들과 함께 가족 캠프를 열었다. 청소년, 청년을 포함한 본당 모든 신자들이 한 번에 한 장소에서 캠프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행사 준비를 맡았다. 장소 선택과 행사 조직위를 구성하는 것을 내 임무로 생각하고, 나머지는 평신도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장소가 바뀌는 우여곡절 끝에, 세부적 사항에 대한 점검을 마치고, 몇 번 답사를 거쳐 드디어 캠프를 열었다.
사실 가족 캠프지만, 청소년과 청년, 그리고 성인이 따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여기서 압권은 어른들이었다. 어스름 해질 무렵 각 구역별 장기자랑 겸 여장 분장의 미스 선발대회가 있었다. 다들 '어디서 저런 끼를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하고 감탄할 정도로 정말 재미있게 분장하고 장기자랑을 보여주었다. 이 시간에 청소년과 청년들은 자신들 프로그램을 다른 장소에서 진행했지만, 그들 역시 한 공간에서 먹고 자면서 캠프를 즐겼다.
다음 날은 자유 시간이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치악산 등반을 하는 사람들, 또 숯가마에 가는 사람들로 나뉘어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와중 소수 봉사자들은 그날 저녁 친교모임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가까운 곳에서 바로 공수한 돼지고기 바베큐 파티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어른들만 거의 500명분을 준비하는 것은 사실 '준비'가 아니라 '전쟁'이었다. 뜨거운 여름 햇살과 함께 화기에서 내뿜는 열기는 봉사자들을 어쩌면 화나게 할 수도 있었다. 드디어 친교 시간. "다함께 소리 내어 노래 부르자.… 가위 바위 보, 세 사람" 서로 손을 맞잡고 노래 부르고 게임을 했다. 이렇게 한바탕 몸으로 가까워 진 다음, 구역별 연극을 공연했다. 준비한 소품과 대사…. '어떻게 준비하고 그 많은 대사를 외웠을까?' 감탄할 정도였다.
주방 봉사자들은 이런 게임에 참여하지도, 장기자랑도 못했지만, 그들이 준비한 바베큐는 일품이었다. 거기에다 구역별로 노래 소리와 건배 외침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면서, 시원한 바람을 통해 본당 공동체가 하나돼가는 느낌에 감동이 절로 북받쳤다. 행사는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가족 캠프라는 행사를 해냈다는 성취감보다는 그때 함께 나눴던 친교가 아직도 가슴에 남는 것은 왜일까? 성령께서는 친교 사절이시기에 우리가 함께 있었던 곳에 항상 머물러 계셨다. 이 뜨거운 나눔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선교의 주요 과제이다. 특히, 묵묵히 주방에서 희생한 봉사자들은 나서기를 좋아하는 현대인에게 십자가의 신비를 보여준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이 친교를 통해 드러나고, 이것이 이웃에게 전달될 때 성령께서 작용하신다. 선교의 최종 목적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 친교에 우리 모두를 참여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선교사이기 전에 먼저 사랑의 친교를 나누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각기 다른 은사를 가진 구성원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다양한 선교지역에 파견된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시야를 넓혀 항상 어디서나 현존하시는 그분을 체험하도록, 우리를 선교의 길로 부르신다. 선교의 주요 목적 중의 하나는 복음을 듣고 형제적 친교를 이루고 기도와 성체성사 집전을 위하여 백성들을 모으는 것이다(「교회 선교 사명」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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