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만주 의병장의 비통한 일기(日記)
[제국의 황혼 '100년전 우리는']
"대답을 하지도 않고 지급하지도 않는다니, 이건 무슨 도리란 말인가. 우리나라의 군수물자를 가져가겠다는 것이지 귀국의 군수물자를 가져가겠다는 것이 아니다. 귀하께서 이토록 우리를 꺼린다면 어찌 나를 포박하여 가두어 일본 사람에게 넘기지 않는가?"
일본의 영향력은 간도까지 미쳐 중국측도 의병투쟁 지원에 미온적이었다. 게다가 '10여리에 떨어져 있는 땅개 놈, 즉 매국적 일진회원이 와서 자신을 탐문 조사'하는 등 친일파들에게 감시당하는 처지였다.
"아, 이 날은 바로 지난날 내가 서쪽으로 넘어오던 날이고, 이 해는 바로 내가 서른이 되는 해이다. 세월은 물처럼 흘러가 버렸는데, 사업은 이루지 못했으니 장차 어찌해야 하는가…비통한 노래를 날이 저물도록 부르다가 붓을 들고 길게 탄식하였다."('일기'·5.25.)
8일 뒤 김정규에게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3도 의군이 조직되었으니 장의군 종사로 참여하라는 반가운 서신이 도착한다. 도총재 유인석과 창의총재 이범윤에게 10여일 뒤 투쟁 결의를 다진 서신을 보낸다. 13도 의군은 국망 이후 러시아 당국의 지도부 검거로 해체되었으나, 김정규는 1920년 간도에서 대한의군부를 조직하는 등 독립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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