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17)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 I

namsarang 2010. 5. 1. 22:33

[선교할 수 있을까]

 

(17)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


                                                                                                                                양해룡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선교, 전례 사목부 담당)


   와우! 정말 색다른 성당이다. 성당 안에는 온통 이콘으로 그려진 성화상, 성모님 상들이 가득 차 있다. 성당 안과 달리 외형은 마치 요정 나라의 집처럼, 아기자기한 모습이다. 이 성당은 모스크바 크레믈린 궁전 바로 옆에 있는 성 바실 성당이다.

 성당 안은 작은 경당으로 이뤄져있고, 중앙에는 꽤 큰 경당이 마련돼 있다. 각 경당에는 제단이 있는데, 그 제단을 막고 있는 장막에 이콘이 그려져 있다. 구원 역사가 한 눈에 펼쳐진다. 화려한 금색으로 물든 아름다운 성화들을 바라보는 방문객들은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감탄도 잠시, 그 성당을 나와 백화점이라는 곳으로 갔는데, 그 곳 회랑에는 전부 명품들만 진열돼 있다. 이것이 바로 러시아다. 종교는 관광객들의 점유물이 되고, 명품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는 그들의 심장부를 꿰뚫고 있었다.

 선교사 방문 일환으로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찾았던 성당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러시아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사회가 극심한 변화를 겪었으며, 1980년대 초반에 사회주의에서 탈피해 자본주의를 받아들였다. 사회주의 시대에 가톨릭교회와 러시아 정교회 건물이 정부에 몰수되거나 파괴돼 종교 생활 자체를 할 수 없었다.

 개방 이후, 돌려받은 교회는 거의 황폐화된 상태였다. 신자도, 성당도 거의 없었다. 바로 그곳에서 가톨릭교회 선교사들이 사목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가 방문한 한인 공동체 주임신부도 그 선교사 중 한 분이다.

 그 신부는 이역만리 떨어진, 러시아 특유의 차가운 환경 속에서 일하고 공부하는 주재원과 교민, 학생을 상대로 사목하면서, 고려인을 위해서도 일한다. 그곳 특성상 선교사는 다른 나라 선교사들과 모임을 가져야 하고 러시아인들과 교류를 가져야 하기에, 영어와 러시아어에 어느 정도 능통해야 한다.

 한국어와 함께 여러 언어를 해야 하는 선교사는 뛰어난 문화적 적응력과 함께 능력도 겸비해야 한다. 아직도 사회주의 분위기가 있어서 위험하기까지 한 그 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또 러시아 정교회가 강하게 숨쉬고 있는 곳에서 가톨릭을 전파하는 선교사들이 자랑스러웠다.

 그 곳에서 선교사가 할 일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한인 공동체 본당 신부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선교사는 거대한 자본과 사회 체제에서 조용히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때론 고독하고, 때론 절망이 밀려와도 내적으로 이겨내며 침묵 속에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삶이다. 그 내적 힘으로 신자들과 함께하고 그들을 위로하며 살아가는 것이 선교이다.

 선교사 삶은 단순하다. 그 어떤 환경에도 오로지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다. 모스크바에는 어린 학생들이 현악기를 배우러 많이 온다. 그들에게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천진하게 웃는 본당신부, 모스크바 교구의 다른 나라 신부들을 만나 선교 방향을 모색하는 진지한 본당신부 모습은 이국 땅에서 묵묵히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선교사의 참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하면서 러시아 역시 그분과 함께 언젠가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 확신했다.
 
 사제들은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자기 나라의 국경을 초월할 수 있도록 성령과 주교에게 협력할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여기에는 성숙한 소명감이 요구될 뿐 아니라…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적응력이 요청된다(「교회 선교 사명」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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