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룡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선교, 전례사목부 담당)
차디찬 겨울바람이 부는 땅, 사회주의 혁명으로 유물론이 팽배한 러시아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지하로 숨을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성직자와 신자들이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과 함께 북쪽 작은 섬으로 유배되고, 거기서 총살당했다고 러시아에서 사목하는 아르헨티나 신부님 증언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신부님이 사목하는 본당의 초대 주임신부님도 그 섬으로 끌려가 순교하셨다고 한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는 마르크스 레닌 사상을 바탕으로 종교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사회주의 사상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성당을 파괴했다.
그 후 모스크바의 봄은 왔지만, 파괴된 성당을 완전히 돌려받지 못했고 신자들은 사라졌다. 그렇지만, 그 내적 힘은 종교를 다시 재건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품고 있다. 그 내적 힘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주의 시절, 이름 없이 죽어간 성직자, 신자들이 아닌가 한다.
종교는 인간을 나약하게 하고, 인간 꿈의 반영과 허황된 망상일 뿐이다. 이것은 인민을 착취하는 일종의 부르주아 부산물일뿐이다. 사회주의가 보는 이러한 쓸모없는 꿈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구세주임을 고백하고, 영원히 살고자 했던 순교자들 고백 때문에 러시아 가톨릭은 하느님 은총과 희망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러한 체험을 어느 한 선교사의 삶에서 찾을 수 있다.
러시아의 꽤 큰 도시에 있는 한 작은 성당은 굉장히 특이하다. 마치 마구간처럼 생겼다. 성당 돔 안에는 마차 바퀴가 걸려 있다. 정부가 돌려준 성당은 원래 마구간이었다. 고딕 건물 성당이 파괴돼 학교가 되었기에 성당 근처 마구간을 돌려준 것이다. 그곳을 꾸며 성당으로 축성했다. 신자는 약 150명 가량 된다고 한다. 비록 작은 공동체이지만 러시아 큰 땅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없는, 힘 있고 역동적인 공동체이다.
이 성당 사제관은 초대 주임신부의 것을 그대로 쓰고 있다. 아주 작은 사무실과 이층 침실은 집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 판잣집 같았다. 검소하고 열심인 주임신부는 새로 축성한 성당 2층에서 이 성당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자신의 삶은 가난하게, 성당은 아름답게, 신자들을 위한 공간은 깔끔하게 정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비록 얼마 안 되는 신자들이지만, 러시아인 신자들과 해외에서 공부하러 온 학생들을 중심으로 사목활동을 펼치는 신부님을 보면서, 우리 신앙인의 삶을 반성해 본다. 신자들을 위해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는 삶, 본당 공동체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신부님의 삶은, 바로 러시아 순교자들 피가 스며든 것이라 생각했다.
아직도 사회주의 통치 체제와 감시가 살아 있는 러시아 땅에서 선교란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많은 신자들을 위해 큰 행사를 계획하고 새로운 사목을 실행하는 한국교회와는 사뭇 다르지만, 러시아교회의 그 강한 힘을 순교 정신을 이어가는 선교사의 노력과 삶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부활하신 주님을 백성들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전 생애를 봉헌한 남녀 선교사들은 의혹과 오해와 반대와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오히려 그들의 특수한 은사의 은총을 재확인하고 용감하게 그들의 길을 계속할 것이며, 신앙과 순명과 목자들과의 유대 안에서 비천하고 어려운 장소를 스스로 택할 것이다. (「교회 선교 사명」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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