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영선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60년 전과 달리 美·中은 전쟁 억지 원해…
지금 시급한 건 전쟁 시비가 아니라
북한 후계 체제를 개혁·개방으로 이끄는것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는 세계대전 규모의 전쟁이 발생했다. 3년에 걸친 싸움에서 3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와 전비(戰費)를 보면 세계역사상 10위권의 큰 전쟁이었다. 세월은 흘러서 6·25 60주년을 맞이했다. 개인으로 치면 철들 나이다. 60년 전에 왜 세계대전 같은 전쟁을 이 땅에서 치렀는가를 제대로 반성하고 한반도 미래사에서 6·25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 방안을 강구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그러나 한반도는 철들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천안함 사건이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엉뚱하게 전쟁위기 시비로 불이 붙었다. 북한 선전 당국은 연일 전쟁위기를 강조하고 한국의 정치 마당은 선거운동 기간 중 전쟁위기를 아전인수(我田引水)해서 구호화했다. 인터넷의 토론장들은 온갖 추측 속에서 공허한 시비를 벌였다. 토론 수준은 한마디로 유아적이었다.
60년 전 한반도에 세계사적 비극이 왜 찾아왔는가에 대해서 국내 학계는 아직까지도 정답을 못 찾고 혼란스럽다. 하지만 국제학계의 냉전연구들은 탈냉전과 함께 이념적 경직의 마술에서 깨어나고 구소련 외교문서의 대규모 공개에 힘입어 선명한 그림들을 보여주기 시작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첫 20년의 정통주의 연구들은 정답을 북한과 소련 그리고 중국의 공동 작업에서 찾았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서 수정주의 연구들은 정답을 한국과 미국의 잘못에서 찾으려는 노력을 경주했다. 1990년대 탈냉전과 함께 수정주의 이후 연구들은 정통주의와 수정주의를 넘어서서 보다 입체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새 안목으로 한국전쟁을 제대로 보려면 국내, 남·북한, 그리고 국제적 삼면성(三面性)을 주목해야 한다. 세계대전 규모의 한국전쟁 발생은 단순한 남·북한 군사 충돌의 확대로 가능하지 않았다. 그 뒤에 냉전의 세계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미국과 함께 전승국이었던 소련이 아시아에서 북한의 '조국해방전쟁'을 지원하자 미국은 냉전의 전 세계적 군사화에 대한 결연한 의지 표시로서 신속하게 참전했다. 성냥불에 휘발유를 끼얹은 것처럼 한반도는 삽시간에 큰불에 휩싸였다. 불행하게도 냉전이 한반도에서 세계적 열전(熱戰)이 된 것은 해방 직후 남·북한이 국내적으로는 분출하는 정치적 이해 갈등을 제대로 풀지 못하고 남·북한 간에는 크고 작은 38선 충돌 같은 군사적 대립을 보이는 속에 북한의 무력혁명 통일전략이 국제사회주의 혁명역량의 도움을 받아 구체화됐기 때문이다.
60년이 지난 오늘의 한반도 전쟁 위기 시비를 국내·외 선전전의 노리개가 되지 않고 차가운 눈으로 제대로 평가하려면 한국전쟁의 삼면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는 60년 전과는 달리 무대의 주연인 미국과 중국이 모두 한반도 전쟁을 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억지(抑止)하려는 데 이해를 같이 하고 있다.
테러와 경제위기 속에서 상대적 쇠퇴의 위험을 극복하고 21세기 세계질서의 주도권을 계속 유지하려는 미국은 최근 발표한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국내적으로는 역량강화와 국제적으로는 동참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세계질서의 새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부상하고 있는 중국도 최우선 국가목표인 경제발전을 위해 평화를 중시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의 국제질서가 60년 전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바뀌지 않은 것은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이다. 지난 20년 동안 세계적인 차원에서 탈냉전이 진행되어 왔으나 한반도는 유일한 냉전의 고도(孤島)로 남아있다. 따라서 6·25처럼 전면전으로 확산되기는 어렵지만, 천안함 사건 이후 제2의 군사적 긴장 가능성은 상존한다.
한편, 국내질서는 지난 20여년 동안 북한의 선군(先軍)화와 한국의 민주화를 겪어 왔다. 특히 북한의 선군정치는 과잉 안보론을 강조함에 따라 한반도 군사적 긴장을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로 만들고 있다.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이해서 필요한 것은 시대착오적 전쟁위기 시비가 아니라 '제2의 천안함 사건'을 막기 위한 국제, 남·북한, 국내의 삼면적 노력이다. 그 중에도 가장 급한 것은 60년 동안 두 번째 등장하는 북한 후계체제가 개혁개방의 새로운 생존전략을 마련하도록 하는 방안에 대한 진지한 논의다. 소박한 햇볕론과 제재론의 허구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