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6.25전쟁60주년

美 첫 '남자 네쌍둥이' 6·25 자원 참전했다

namsarang 2010. 6. 17. 23:09

美 첫 '남자 네쌍둥이' 6·25 자원 참전했다

 

맏형 징병 통보 받고 "함께 가겠다" 청원… '형제는 같은 부대 불가' 규정 깨고 파병
복귀 후 고향서 영웅 대접 4채 집 짓고 평생 함께해… 집앞 길은 '쿼드 레인(Quad·넷)' 命名

미국 기록상 최초의 남자 네쌍둥이가 한국전쟁에서 모두 참전해 싸웠다는 새로운 사실이 한국전쟁 60주년을 앞두고 밝혀졌다. 미국국립문서보관소(NARA)가 보관 중인 동영상 자료와 한국전 당시의 미국 언론에 따르면 네쌍둥이 칼, 도널드, 앤서니, 버나드 페리코니(Perricone) 형제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7개월간 한국에서 복무했다. 가장 키가 큰 도널드와 가장 작은 막내 버나드의 키 차이가 15㎝ 이상인 이란성(二卵性)이지만 넷은 평생 거의 모든 것을 공유하며 우애로운 삶을 살았다.

네 쌍둥이 병사가 한국전 복무를 마치고 샌프란시스코 항을 통해 귀국하던 때의 모습. 왼쪽부터 앤서니, 버나드, 칼, 도널드 페리코니. /미 국립문서보관소·연합뉴스
네쌍둥이는 1929년 텍사스 보먼트(Beaumont)의 전기도 안 들어오는 농장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 부모에게 태어났다. 현지 신문 휴스턴크로니클에 따르면 이미 5명의 아들을 둔 부모는 딸을 원했다고 한다. 최초의 네쌍둥이라는 기록 때문에 출생 때부터 신문에 자주 오르내렸다. 각각 이름의 앞글자를 따 'ABCD쿼드(Quad·넷)'라는 별칭으로 통했고, 보먼트시 야구단의 마스코트로도 지정됐다.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도 페리코니 부부에게 축전을 보냈으나, 독재자를 싫어했던 부부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네쌍둥이는 1951년 징병 통보를 받고 입대했다. 미군은 이들을 홍보에 적극 내세워 입대식에서 형제가 대표 선서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맏형 칼에게만 한국전쟁 배치 명령이 떨어지자 나머지 형제들이 "우린 태어나는 순간부터 뭐든지 함께 했다"며 같이 가겠다고 나섰다. 미 국방부는 2차대전 당시 한 배에 타고 있던 5명의 수병 형제가 한꺼번에 죽은 후 "형제를 같은 부대에 배치할 수 없다"는 규정을 제정해놓은 상태였다. 네쌍둥이는 유명세를 적극 활용해 한국전에 동반 참전할 수 있게 해달라는 여론몰이에 나섰다. 결국 당시 텍사스 주 상원의원이던 린든 존슨까지 나서 국방부에 특별허가를 요청했다. 덕분에 1952년 5월 페리코니 네쌍둥이는 모두 한국에 올 수 있었다. 이들은 한국에서 미군 7사단 73전차대대에 배치돼 7개월간 전차 조종수, 부조종수, 포수 등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아무런 부상 없이 복무를 마치고 12월에 귀국해 고향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이듬해 전역 후엔 각자 삶을 살아갔지만 여전히 함께였다. 똑같은 양복을 맞추고 똑같은 하늘색 시보레 자가용을 구입했다. 이발사가 된 앤서니를 제외하고 모두 똑같은 정유공장에 취직해 은퇴할 때까지 다녔다. 이들은 함께 보먼트 남부에 땅을 사 4채의 벽돌집을 짓고 정착했다. 그들 집앞으로 새로 난 길의 이름은 '쿼드 레인'이라고 지어졌다. 이 길은 곧 네쌍둥이가 낳은 15명의 딸과 5명의 아들이 뛰어노는 소리로 시끌벅적해졌다. 막내인 버나드만 1990년 심장마비로 사망했을 뿐 나머지 형제는 생존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