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6.25전쟁60주년

전투식량 먹다가도 고라니 소리 나면 즉각 총구 겨눠

namsarang 2010. 6. 18. 23:31

[DMZ 속으로]

전투식량 먹다가도 고라니 소리 나면 즉각 총구 겨눠

  • DMZ 특별취재팀

[DMZ 속으로] [1부] 긴장 흐르는 현실
야광봉·손전등·양초… 귀순자 유도함 점검
건조한 날엔 북 火攻대비 대피·맞불 놓기 훈련도

[5] 언론에 처음 공개된 GP대원들의 훈련

하늘엔 청호반새가 지렁이를 문 채 비행하고, 땅 위엔 무당개구리가 떼 지어 어지러이 질주한다. 비무장지대(DMZ)의 여름, 서정이 있긴 있으되 지극히 짧다.

지난 16일 화천에서 만난 한 중사는 갓 다녀온 요즘 DMZ를 묘사하면서 만추(晩秋) 닮은 새벽, 성하(盛夏) 같은 한낮의 'DMZ 6월'을 이렇게 표현했다. "새벽녘 밖에 서면 냉랭한 공기가 잠을 쫓는다. 대낮엔 작렬하는 뙤약볕이 머리를 어지럽힐라 치면 군복을 뚫고 흡혈하는 맹렬한 곤충 덕에 또 정신을 되찾는다."

계절이 바뀌어도, DMZ 내 최전방 경계소초(GP) 대원들의 일상, 그 반복되는 훈련은 여전하다.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3월까지, 여러 사단에 걸친 GP를 취재하면서 그동안 언론에 공개된 적이 없는 GP 대원들만의 훈련을 접한 것은 우연이자 행운이었다. 언론 또는 귀빈을 위해 급조한 시연(試演)이 아닌, 그들의 실전 같은 훈련을 소개한다.

강원도 화천지역 GP 대원들이 눈 덮인 DMZ를 수색하기 위해 GP 건물을 나서고 있다. 대원들은 팀장의 수신호와 고갯짓, 휘파람 소리에 따라 조용하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Canon 1D Mark Ⅳ EF 24~70㎜ 1/250 F11 ISO 200 촬영) /DMZ 특별취재팀
야간 귀순 도우려 양초 갖춰

6·25 당시 격전지였던 강원도 ○○GP는 북한 GP로부터 1.9㎞ 떨어져 있다. 거센 눈발이 몰아치는 2월 초, DMZ 내부 GP 가는 길에서 김 모 중위가 귀순자 유도함을 점검한다. 유도함 속엔 '자유대한으로의 귀순을 환영합니다'라는 글귀와 우리측 안내병과 연결되는 청색벨이 있고, 야광봉·손전등·배터리·양초가 갖춰져 있다.

귀순자 유도는 생사가 걸린 작전이다. "귀순 의사를 밝히고 걸어오던 병사가 갑자기 수류탄을 던져 넣고 도주했다" "북한에서 넘어온 할머니가 건넨 독을 넣은 떡을 먹고 경계근무자 대부분이 사망했다"…. '귀순을 가장한 기습' 사례는 전방사단 곳곳에서 실제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DMZ에 설치된 귀순자 유도함. /DMZ 특별취재팀
2002년 2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파주 지역 비무장지대(DMZ) 내 최전방 경계소초(GP)를 방문했던 하필 그때, 북한 귀순자 한 명이 내려왔고 북한군 아홉명이 그의 뒤를 쫓다 돌아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전방지역 전 사단이 미 대통령 방한 비상경계 태세를 갖췄을 당시라 '부시 비밀 암살조일지 모른다'는 얘기가 돌아 긴장이 극도로 고조됐다고 한다.

北, 기상 이용한 火攻

북한군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화공(火攻)계략을 여전히 활용하고 있다. 북서풍과 건조한 날씨를 이용해 늦가을과 겨울에 DMZ 지역에 불을 놓는 것이다. 이른 봄에도 화공을 한다. 우리 GP 대원들은 이에 대비해 맞불을 놓는다. 북한측의 은거지·지뢰 제거와 침투에 대비한 시계(視界) 확보를 위해 화공작전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추진철책 차단작전'도 GP 대원들의 주요 훈련 중 하나다. 추진철책이란 북한군이 기존 철책보다 군사분계선 쪽으로 앞당김에 따라, 우리도 이에 대응해 북쪽으로 철책을 앞당겨 놓은 것이다. 골을 타고 넘는 바람 소리가 마치 사람의 육성처럼 들리는 지난 3월 동부전선의 한 GP 근처, 대원들이 북한군 예상 접근로를 따라 산개해 실전 같은 작전을 펼치는 내내 긴장감이 전해졌다.

동부전선 GP 병사들이 강풍에 쓰러진 태극기와 유엔기 깃대를 세우고 있다. /DMZ 특별취재팀
대원들은 DMZ 내 정찰활동 임무도 수행한다. 지난 2월 동부전선 △△GP에서 본 훈련 모습엔 긴박감이 흘렀다. 대원들은 '전식'(전투식량)을 먹다가도 고라니 소리에 임전 태세로 바뀐다. 사람 허리춤까지 쌓인 눈 위로 좌우 발자국이 한 쌍을 이뤄 가까이 붙은 고라니 족적을 확인한 뒤, 그제서야 끼니를 다시 잇기 시작한다. 훈련을 지휘한 이 모 대위는 "북한은 우리가 공격할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고, 북한군의 월남 가능성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 같다"고 했다.

동부전선 수색대원들이 DMZ 인근 고지에서 매복호를 파고 적의 동태를 살피는 야간 훈련을 하고 있다. /DMZ 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이 비무장지대 일원에서 촬영한 사진들은 인터넷(dmz.chosun.com)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6·25전쟁 60주년 특별기획전 ‘아! 6·25’, 조선일보 창간 90주년 기념 ‘Inside the DMZ 사진영상전’에서 볼 수 있습니다.


〈DMZ 특별취재팀〉

사진·영상 이기원 부장, 최순호·정경열·주완중·채승우 차장대우, 이재호·민봉기 기자(이상 사진부)

취재 유용원 군사전문기자(정치부), 박영석 차장대우(사회부), 최수현 기자(사회정책부)

영상 총감독 박종우 객원기자

대표 이메일 dmz@chosun.com

20년을 관찰한 155마일 DMZ의 야생
언론 최초! DMZ 248km 상공 헬기 횡단
 

[DMZ 속으로]

남쪽 능선에 정체불명의 불빛이 보인다… 발포하라

  • DMZ 특별취재팀

본지, 언론 사상 첫 내부 취재 [6] DMZ의 또 다른 파수꾼 수색대대
겨울엔 15시간 밤샘 매복… 신병중 최강의 인재 뽑아 몇주간 수색요원화 교육

모질고 위험한 작전이야 전방에서 당연지사다. 비무장지대(DMZ)와 접한 남방한계선 일대를 지키며 밤낮으로 DMZ 내 수색·매복작전을 펼치는 수색대대 대원들 역시 DMZ 내에 일정 기간 상주 근무하는 경계소초(GP) 장병들 이상으로 우리의 주요한 파수꾼이다. 수색대원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소임을 다하고 있는가, 어떻게 전사(戰士)로 단련되는가를 바로 곁에서 지켜봤다.

독한 추위 속 15시간 밤샘

강원도의 봄은 실종됐다. 강원도 DMZ 인접지역엔 5월까지 눈이 오더니 6월 들어 땡볕이 온몸을 눅눅하게 적신다. 이곳 DMZ 통문 앞에 당도한 것은 지난 3월 하순 새벽이었다.

"장갑을 세 겹 껴도 열 손가락이 마비된 것 같아요. 이 정도 추위면 솔직히 믿을 건 정신력뿐입니다." 밤새 DMZ 매복을 마치고 나온 원종국(가명) 병장이 언 입으로 하는 말이 무척 부자연스럽다. 위장(僞裝)칠을 한 그의 얼굴 한가운데 거뭇한 코밑에서 콧물이 휙 떨어진다. 동행한 박은성(가명) 중대장(대위)은 "우리가 상대하는 적은 지형과 기상, 진짜 적까지 모두 셋이다"고 말한다.

강원도 고성지역 수색대대 대원들이 헬기레펠훈련을 하고 있다.

당시 매복 병력들은 눈밭에서 보호색이 될 흰색 설상복 차림이다. 그중 통신병은 통신장비와 소총 등을 포함해 몸에 두른 짐보따리 총무게가 30㎏에 이르니, 박빙(薄氷) 깔린 수색로에서 몸이 휘청댈 만했다. 매복작전 이전 4시간, 이후 5시간 두 차례로 잠을 쪼개 자야 하는 대원들 눈꺼풀은 오죽 무겁고, 플라스틱 깔판 하나에 밤새 누인 몸은 또 오죽 눅진하랴. 매복은 일몰 시각 중심으로 겨울엔 15시간, 여름엔 9시간쯤 진행한다. 여명과 함께 밤샘 근무를 마치는 이들도 그랬지만, 지난해 가을 경기도 파주에서 만났던 수색대대 장병들 역시 "매복하기엔 벌레에 아무리 깨물려도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끝내는 여름이 낫다"고 했다.

훈련이 곧 실전임을 체득하다

강원도 독도소대의 저녁, 인근 항구의 불빛이 얌전히 새 드는 이곳 하늘에 달무리가 떴다. 금강산으로 갈 걸음이 자칫하면 건봉산으로 샐 수 있으니 이 어간에서 지도 한번 펴보라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 독도(讀圖)인데, 적적하고 바람 센 것(최고 풍속 68m가 관측됐다고 한다)으로 치면 외딴 섬(獨島)처럼 거칠고 추운 곳이다. "칼날 같은 수색, 빈틈없는 매복!" 대원들은 구호를 외치고 또 훈련을 나선다. 크레모아를 설치하고 진지에 몸을 숨기고 야간사격을 한다.

대원들을 이끈 김정환(가명) 소대장(중위)은 지난해 9월 매복 중 겪었던 실제 상황을 들려줬다. "자정 무렵 군사분계선(MDL) 남쪽 능선을 따라 미상 불빛이 보였다. 발포를 해야 할까, 거센 상대의 반격을 부르지나 않을까, 찰나의 망설임 끝에 2분간 화력을 집중했다. 어떻게든 완전작전으로 종결해야 한다는 것 말고 다른 생각이 안 들었다." 당시 작전에 참여했던 김기현(가명) 상병은 "불빛을 관찰해 발포하기까지 1시간여 동안 두려움이 없진 않았지만, 야생동물 눈빛과 손전등 불빛을 구별하는 요령, (능선을 향한) 상향식 사격 같은 평소 훈련이 실전에 그대로 이어지는 것임을 되새겼다"고 말했다. 작전 다음날 북한군의 침투 흔적을 찾진 못했으나 DMZ 내에서, 특히 매복 중 사격은 무척 드문 일이라고 한다.

"희망자 중 최고 자원 엄선"

지난 2월 강원도 모 사단 신병교육대 강당 무대, 군복 가슴에 빼곡히 흉장(胸章)을 단 김모 수색대대 중대장(대위)이 올라섰다. "최강의 자원을 뽑으러 여기 왔다. 수색대대는 365일 매일 군사분계선과 남방한계선 사이 수색과 매복작전을 벌이고, GP보다 더 북쪽까지 올라가 수색한다."

북한지역 DMZ에 화공작전으로 추정되는 산불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시계 확보를 위한 화공작전은 DMZ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강원도 중동부전선을 비행하던 취재 헬기에서 포착했다(Canon 1D MarkⅣ EF70~200㎜ 1/500 F8 ISO200 촬영).

희망자라고 모두 수색대대원으로 뽑진 않는다. 신체조건, 가출·범죄 경력, 가정환경, 학력, 심리검사와 면담을 통과한 이들을 선발해 특공무술, 헬기레펠 같은 과정을 포함한 수색요원화 교육을 몇 주간 추가 실시해 투입한다. 지난 3월 수색대대 연병장에서 열린 전입신고식에서 수색대대장(중령)은 "수색대대인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신병들을 독려했다.

며칠 뒤 이 연병장에선 특공무술 경연이 열렸다. 눈·얼음·흙탕물이 범벅된 땅에서 대원들이 품새·낙법·겨루기·격파 무공을 선보였다. 7명이 엎드려 있는 인간 장애물을 뛰어넘어 낙법으로 사뿐히 착지하고, 머리·손(정권)·발(돌려차기)로 별안간에 송판을 깬다. 어느새 따뜻해진 바람결에, 아니면 이들의 내공에 놀란 양 깨진 고드름이 땅바닥에 맞부딪혀 "텅" 하는 소리를 냈다.

(※기사에 등장하는 장병들을 가명·익명으로 표기한 것은 육군본부측 요청에 따른 것입니다.)

특별취재팀이 비무장지대 일원에서 촬영한 사진들은 인터넷(dmz.chosun.com)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6·25전쟁 60주년 특별기획전 ‘아! 6·25’, 조선일보 창간 90주년 기념 ‘Inside the DMZ 사진영상전’에서 볼 수 있습니다.

〈DMZ 특별취재팀〉

사진·영상 이기원 부장, 최순호·정경열·주완중·채승우 차장대우, 이재호·민봉기 기자(이상 사진부)

취재 유용원 군사전문기자(정치부), 박영석 차장대우(사회부), 최수현 기자(사회정책부)

영상 총감독 박종우 객원기자

대표 이메일 dmz@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