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6.25전쟁60주년

6·25 영웅 찾는 전적지 순례자

namsarang 2010. 6. 20. 17:06

[Why]

6·25 영웅 찾는 전적지 순례자

 

자기 돈 들여 242곳 찾아다닌 신기수

"전적지(戰跡地)는 가슴 아픈 전쟁의 상흔이지만 후손들이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전적지를 자기 돈 들여 찾아다니는 미친 사람이 있다. 신기수(39·회사원·사진) 이야기다.

아버지는 신치구(78) 전 국방부 차관이다. 어릴 적부터 주위에 군인이 많았고 자연히 초록 군복에 익숙해졌다. 군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대학(서강대 독문과)도 군과는 전혀 상관없다. 군은 '친숙한 존재'일 뿐이다.

그의 삶을 잡지 한권이 바꿨다. 1994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친척 집에 놀러 갔다. 놀 게 없어 아무 생각 없이 서점에 들렀다. 미군·영국군이 뽀얀 먼지를 가로지르며 총 들고 상륙하는 장면이 그려진 잡지가 눈에 띄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50주년 특집기사를 읽어나갔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그 작전에서 큰 공 세운 미국 밴 플리트와 마크 클라크, 한국 백선엽 장군 회고록을 읽었다. 2차대전 문집과 10권짜리 한국전쟁사도 읽었다.

영화도 자료가 됐다. 영화 '전투'와 '지상 최대의 작전'(1962년)이었다. 1997년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사 마케팅 담당으로 들어갔다. 잠시 잊었던 전쟁을 다시 끄집어낸 것은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다.

전적지들은 대부분 관리가 부실했다.오래전 가져다 놓은 먼지 수북한 조화가 눈에 띄기도 했고, 수풀에 둘러싸여 있어 찾는 데 한참을 헤맨 곳도 있었다. 왼쪽부터 서울 청계산 매봉아래에 있는 충혼비, 강원도 철원 성연교, 강원도 화천 심일 소령 흉상, 그리고 2005년 5월 5일 방문 당시 찢어진 채 바람에 날리던 서울 강서구 미타사 안에 있는 호국충혼위령비 근처 의 태극기. / 신기수 제공
2001년 9월부터 3달간 방영된 이 드라마의 배경은 2차 대전이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나온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원서를 사 읽었다. 그리곤 아예 번역했다. 이 책은 2002년 초 국내에서 출간됐다.

2004년 신기수는 프랑스 카렝탕에서 노르망디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나오는 쉬프티 파워스를 비롯해 참전자들을 만났다. 그에게 '영웅'과 다름없었다. 행사는 국가의 축제와도 같았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우리에겐 6·25가 벌어졌고 이 전쟁을 기념하는 건 값진 역사 교과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6·25와 관련된 전적지를 기억 못하는 게 서럽기도 했다.

전적지는 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 있었다. 명단이 800곳 가까웠는데 그 중 363개를 추렸다. 2004년 8월 28일 경기도 가평 '가평지구 전적비'를 시작으로 올 2월 27일 양평군 한국·UN 프랑스군 전적비까지 242곳을 순례했다.

신기수는 2004년 9월 10일 본 강원도 화천 '파로호(破虜湖) 기념관'을 기억한다. 국군 6사단이 중공군 3만명을 수장시킨 곳이다. "기념관 옆 식당이 있던 그곳은 당시 폭격 맞은 것 같이 폐허였다. 살수대첩 기념관도 아닌데."

하나같이 관리가 엉망이었다. "경기도 파주시 설마리 '영국군 전적비'와 사울 강서구 개화동 '호국충혼위령비'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걸려 있던 태극기가 찢어져 있었다는 거다. 지금은 누군가가 태극기를 교체했겠지만…."

강원도 철원군 청량리 '성연교'는 1967년 12월 5사단 소속 황성연 상병이 훈련을 가다 차량 전복으로 죽어 황 상병의 아버지가 직접 추념비를 세운 곳이다. 그런데 그곳엔 주소도 없었다고 한다.

유일한 실마리란 철원에 있는 다리 중 심한 S자 커브길에 있다는 것뿐이었다. 동네 주민조차 존재와 유래를 몰랐을 정도였다.

그는 "그래도 최근에 손을 본 몇몇 곳은 관리에 신경을 쓰는 듯했다"고 말했다. 신기수가 꼽은 곳은 영천호국원·38선 돌파기념비·한국UN프랑스군 전투전적비·지평리 프랑스군 전적비·청계산 특전사 충혼비 등이다.

"'민병권 장군 공덕비'를 찾을 때였다.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실운공원에 있다는 것만 알고 출발했는데 찾기가 힘들었다. 면사무소 직원 한 분과 뒤져 결국 찾았다. 나중에 그가 '나도 몰랐던 걸 알려줘 고맙다'고 했다."

앞으로도 가야 할 곳이 100군데가 넘는다. 신기수는 "결혼을 하고 나니 시간이 부족해 출장 때마다 그 지역 전적지를 찾는다"고 했다. 그중에는 군부대 안에 있어서 영원히 가보지 못할 곳도 있다. 신기수가 말했다.

"올해가 6·25전쟁 60주년이다. 70주년이면 2020년이 되는데 6·25 전쟁영웅 중 몇분이 살아계실까. 이대로 전적지를 방치하고 영웅들을 대접하지 않는다면 새 세대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잊혀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