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6.25전쟁60주년

6.25 전쟁 순교자 시복시성 어떻게 돼가나

namsarang 2010. 6. 20. 18:20

6.25발발 60주년 특집 -

 

6.25 전쟁 순교자 시복시성 어떻게 돼가나


올해 말 6.25 순교자들 윤곽 드러나

    올해로 6ㆍ25 전쟁이 일어난지 60주년이 됐다. 이 전쟁으로 남북한을 합해 30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부상자와 가족을 잃고 고향을 떠난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한국 천주교회도 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많은 신자들을 잃었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인사들이 순교하거나 피랍 행방불명됐다. 양민인 신자들이 사제의 행방을 밝히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 가족이 참살당하는 처참한 일들도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특히 한국 천주교 신자들 희생 대부분은 1950년 6월말부터 9월 중순까지 약 두달 반 동안 집중적으로 발생했으며 북한의 평양, 덕원, 함흥교구와 남쪽 서울, 춘천, 대전, 전주교구의 인적 피해가 상대적으로 컸다.

 6ㆍ25전쟁 60돌을 맞아 전후 공산당의 박해로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시성운동의 현실태를 살펴보았다.
 
 "6.25전쟁 당시 공산군에게 납치되거나 피살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의 명단이 있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그들의 순교 행적을 규명할만한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전국적으로 시복시성 운동에 대한 바람이 일어야 하는데 현실은 너무 무관심하다. 주교회의와 각 교구장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순교자 현양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지난 3월 주교회의 봄 정기총회에서 '근현대 신앙의 증인에 대한 시복 통합 추진 선언'이 발표된 이후 시복 추진 관계자들과 교회사 전문가들은 기대와 우려를 한꺼번에 쏟아냈다.

 6ㆍ25전쟁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시성건은 1984년 103위 한국 순교 성인 시성 이후 한국 주교단의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의안'에 수록되면서 처음으로 공론화됐다.

 이를 계기로 전주교구를 비롯한 몇몇 교구에서 6ㆍ25 순교자들에 대한 자료 수집 작업에 착수했고, 6ㆍ25 전쟁 전후 공산당의 박해로 순교한 한국 천주교 성직자 수도자가 100여 명에 이르는 것을 확인했다.

 학자들은 여기에 평신도 희생자들까지 발굴하면 지금까지 알려진 순교자 수의 몇 배가 될 것이라 추산한다. 한국 천주교가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작성한 「현대 순교자 명부」에 160명의 6ㆍ25전쟁 순교자들의 이름과 약전이 수록돼 있는 것만 봐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 이 명부에는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다수의 교구 평신도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이 누락돼 있기 때문이다.

 주교회의 결정에 따라 6ㆍ25전쟁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시성 실무를 맡은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위원장 박정일 주교)는 올해 말까지 각 교구별로 6ㆍ25 순교자들의 명단과 약전을 받기로 했다. 이 약전을 기초로 시복시성 주교특위는 각 대상자별로 순교 행적을 조사한 다음 시복 대상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시복시성 주교특위 총무 류한영 신부는 "올해 말이 되면 6ㆍ25 순교자들에 대한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며 "서울대교구와 평양, 대전교구 등을 중심으로 6ㆍ25 순교자들에 대한 많은 조사자료들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류 신부는 또 "6ㆍ25 순교자들의 시복 추진과 관련해 가장 큰 난관은 피랍 행불자들의 순교사실 여부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라며 "세월이 흐름에 따라 목격 증언자들을 점차 찾기 어려운 것이 고민거리"라고 밝혔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 위 명단은 주교회의가 1998년 12월에 발표한 '현대 순교자'명부 가운데 6.25때 순교한 성직자,수도자 명단만을 발췌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