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룡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선교, 전례사목 담당)
교황에게 선교의 책임을 받은 스페인 군인들이 남미에 도착한 것은 16세기였다. 그런데 그들은 선교뿐 아니라, 식민지 확장이라는 제국주의적 야망도 갖고 있어서 원주민을 처음부터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이 활짝 꽃폈던 그곳에 그리스도교 문화와 신앙을 전파한다는 것은 물리적 힘이 없이는 불가능해 보였던지 원주민들과의 전쟁을 불사했다.
그 결과 그들 문명이 파괴되었고 그 위에 교회는 심어졌다. 원주민 대부분이 전쟁으로 사라졌지만, 남아있는 그들은 토착 종교를 버리고 가톨릭을 믿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는 어디까지나 강제적인 것으로 그들이 믿고 있었던 토착종교 위에 표면적으로 그리스도를 얹은거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선교를 수행한 스페인은 자신의 그리스도교 문화를 그대로 가져왔다. 그래서 남미의 교회 건물과 건축양식 등은 스페인의 판박이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원주민들을 대하는 유럽인들 태도였다. 식민지화에 목적을 둔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을 노동자로 인식했다. 그래서 그들 노동력을 이용해 식민지의 광업과 농업을 발전시켜, 유럽 자국으로 수출함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챙겼다.
그러나 그들 중 양심 있는 선교사들은 원주민들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Bartolo me de Las Casas)는 이러한 원주민의 상황을 유럽에 알리고, 그들 인권을 존중하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냉소적인 반응이었다.
더욱이 유럽인은 원주민을 정복하면서, 그들 영혼을 인간의 영혼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영화 '미션'에서 보듯이 산간에서 살아가는 원주민들을 잡아 노예로 삼고, 그들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이에 맞서 그들 삶 속에 파고드는 예수회의 선교는 마치 교회의 희망처럼 보이기도 했다.
예수회는 원주민에게 농업을 가르치고, 그들 문화를 파괴하지 않았으며, 서양 문화를 가르치면서 서서히 가톨릭을 체험하도록 배려했다. 이렇게 예수회는 원주민들 인권을 존중하면서 그들 문화와 조화를 꾀했다.
지금 남미 인구의 90% 이상이 가톨릭 신자다. 그러나 분명, 원주민 문화에 토착화된 가톨릭보다는 유럽 가톨릭 자체이다. 그렇다고 선교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강제적 선교였지만, 원주민의 문화와 인권을 존중했던 수많은 선교사들 노력이 있었기에 성공적인 모습도 있었다.
강제적 힘을 통한 선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 선교는 분명 실패한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선교적 자세는 우리가 시도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는 미래의 가장 중요한 선교적 자세라는 것이다.
문화에 대한 이해 역시 같은 맥락이다. 원주민 문화와 가톨릭 문화의 조화를 꾀하는 문화에 대한 긍정적 이해는 선교의 가장 중요한 바탕이다. 역사 속에서 우리는 분명한 선교의 방향을 인식하며, 우리의 삶에서도 그것을 실천하는 지혜를 가지면 좋겠다. 다른 나라와 교회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은 출신 지역의 문화 환경을 초월하여 파견된 지역의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자신들을 적응시킬 필요가 있다. 그들은 … 그 장점을 발견해야 한다. (「교회 선교 사명」 53)
선교사는 자기 안에 교회의 정신과 개방성을, 모든 백성과 개인들 특히 약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을 지닌 '보편적 형제'이다. 그는 인종과 계급과 사상의 분열과 한계를 넘어서 세상에 있어서 보편적인 하느님의 사랑의 표지가 된다. (「교회 선교 사명」 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