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룡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선교,전례사목부 담당)
얼마 전, 그동안 모아둔 용돈으로 친구 신부의 도움을 받아 카메라를 샀다. 나는 솔직히 이 작은 물건이 내 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졌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금세 사라졌다.
사진은 정말 나를 자연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친구 신부와 같이 시간을 내서 서울 외곽으로 나가 사진을 찍을 때 풍경에 몰두하느라 서로 말이 없다. 만나면 수다를 떨던 전과 달라졌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렌즈의 특성에 따라 사물이 달라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0mm 매크로 렌즈는 우리가 지나칠 수 있는 작은 물체, 꽃, 곤충, 작은 동물 등을 찍는 데 유용하다. 이 렌즈로 촬영한, 가까이 있는 작은 피사체 특히 꽃 사진은 정말 아름답다. 사진기가 없을 때는 관심이 없었던 작은 '자연'을 사진으로 찍어 LCD 판넬을 통해 바라보면 매우 아름답다.
또 줌 렌즈는 광각과 망원을 맘대로 조절할 수 있다. 30mm 이하는 광각으로 풍경을 멀리서 보는 것처럼 찍을 수 있고, 70mm는 피사체를 마치 내가 눈으로 보는 것보다 좀 크게 찍을 수 있다.
한번은 친구들과 멀리 휴가를 간적이 있다. 우리 모두 하늘과 바다, 주교좌성당과 그 주변을 사진에 담느라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압권은 저녁노을이었다. 구름과 하늘이 마치 자연의 오케스트라를 듣는 것 같은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과거에 그냥 눈으로 보면서 감상할 때와는 다르게, 이 모든 것을 렌즈에 담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었다.
사진기는 조리개와 셔터속도로 빛을 조절해 선호하는 색의 심도를 조절할 수 있다. 그래서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찍는 것보다 빛을 이용해서 우리가 원하는 색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 그동안 풍경의 아름다움을 마음으로 느끼고 말로 전달했는데, 이제 사진기를 통해 그 아름다움을 찍고, 또 자연 속에 숨겨져 있는 하느님 창조의 놀라움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 촬영과 선교를 비교할 수 있을까? 사진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고 어느 정도 조작이 가능한 것과 같이 신앙인이 개인적으로 이웃에게 접촉해 자신을 통해 이웃이 신앙을 체험하게 하면 어떨까? 마치 사진기를 통해 자연의 신비를 좀 더 분명히 알아채는 것과 같이, '나'라는 사진기를 통해 이웃이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체험한다면 그들은 진정한 삶의 의미를 추구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진기의 100mm, 30mm, 70mm 렌즈가 다르듯, 이웃에게 접근하는 방법도 다르게 해서 때론 가까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때론 멀리서 그들을 지지해 주면서 우리의 신앙 체험을 개인적으로 전달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나를 통해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인생의 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우리가 사진기를 통해 사진 안에 찍힌 자연의 신비에 감탄하는 것처럼, '나'라는 사진기를 통해 아름다운 창조의 신비를 깨닫고, 우리 모두의 주님이신 하느님을 기쁘게 만날 수 있게 한다면 이처럼 확실한 선교는 없을 것이다. 일반적인 복음 선포와 병행해서 해야 할 것은 개인적 접촉에 의한 전달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주 이 방법을 사용하신 것이다. 예컨대 니코데모, 자캐오, 사마리아 여인, 바리사이파의 시몬 등과 함께 대화하신 것들이다.… 사실상 복음을 전하는 데 자신의 신앙 체험을 다른 이에게 전하는 이외에 다른 방법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현대 복음 선교」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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