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6.25전쟁60주년

"고국 위기에 돌아와 싸운 그가 진정한 한국인이었소"

namsarang 2010. 6. 23. 14:11

"고국 위기에 돌아와 싸운 그가 진정한 한국인이었소"

6·25 전사 '한국 태생' 쇼 대위 동상 제막

22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은평평화공원에서 6·25전쟁때 자원입대했다가 전사한 미 해군 윌리엄 해밀턴 쇼(Shaw) 대위의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1922년 평양에서 선교사 부모의 아들로 태어나 평양외국인학교를 졸업한 쇼 대위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철학박사 과정을 밟다가 6·25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조국에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히 공부만 하겠느냐"며 자원입대했다. 한미 해군을 잇는 연락장교로 인천상륙작전 등에서 공을 세웠으나 전쟁 발발 3개월 만인 1950년 9월 22일 은평구 녹번리 전투에서 2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6월 9일자 A33면>

이날 제막식에는 현인택 통일부 장관, 안병태 한국해양전략연구소장, 박세환 재향군인회장, 구마타오타오 주한 미 해군사령관, 노재동 은평구청장 등 2000여명이 참석했다. 쇼 대위의 큰며느리인 캐럴 쇼와 손자 등 유가족, 그리고 참전용사 헤서스 로드리게스씨 등이 미국에서 왔다.<사진>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이날 1947년 진해 해군사관학교에서 쇼 대위와 훈육관으로 1년간 같이 근무했던 공정식 전 해병대 사령관이 쇼 대위의 가족들을 만나 "나는 쇼의 오래된 친구"라며 감격의 인사를 나눠 눈길을 끌었다.

공 전 사령관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직후 맥아더 장군과 한국군 지휘부 통역을 맡은 쇼 대위를 인천 부두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며 "하버드대에 공부하러 가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공부는 조국에 평화가 온 뒤에 다시 더 하겠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공 전 사령관은 "쇼 대위는 능숙한 한국어 실력으로 한미 해병대 간 전투협조 업무를 맡았고,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작전으로 선봉에 섰었다"며 "따뜻하고 유머 넘치며, 한글뿐 아니라 한자까지 많이 알던 그야말로 진짜 한국인이었다"고 했다.

쇼 대위 가족의 한국 사랑은 4대째 이어지고 있다. 그의 부모는 40여년간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했고, 부인 후아니타 쇼는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로, 아들 윌리엄 쇼는 서울대 법대 교수로 일했으며, 손녀 줄리 밀러는 오산 공군기지에서 장교로 근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