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60주년 기획… 지원 절실한 6·25 원조국·최빈국 10개국을 가다 [4] 페루
"왜 이렇게 사냐고 묻기보다 작은 도움이 급해"
페루 이키토스시(市)의 벨렌 지역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하던 배우 한고은(35)씨는 자원 봉사자가 건넨 간식거리에 손사래를 쳤다. 슬리퍼 살 돈 2솔(약 800원)이 없어 쓰레기 가득찬 뻘밭을 맨발로 다니다 상처를 입는 아이들을 봤기 때문이다. 한씨는 "아이들 보는 앞에선 물 한 모금도 마시기 미안하다"고 간식을 사양했다.
지난달 12일 오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의료봉사하러 간 벨렌 지역에는 평소 의료혜택을 받지 못한 주민 수백명이 장사진을 이뤘다. 준비해간 항생제와 진통제, 비타민이 3시간 만에 바닥났다.
- ▲ 페루 북쪽 이키토스시 벨렌지역 수상가옥촌에서 배우 한고은씨가 하반신마비로 욕창을 앓고 있는 에두아르도(오른쪽)군에게 연고와 항생제를 나눠주고 있다. /박국희 기자
의사 김기홍(33)씨는 "오염된 물 때문에 피부 질환을 앓는 주민들이 특히 많았다"며 "치안이 취약한 벨렌 지역은 의사들이 꺼리는 곳이라 주민들이 의료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조차 관광객을 둘러싸고 순식간에 소지품을 훔쳐간다고 해 '인간 피라니아(아마존의 식인 물고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했다.
수상 가옥촌을 방문 진료한 한고은씨는 "처음 벨렌에 왔을 때는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심한 악취에 놀랐다"며 "왜 이렇게 사는지 답답했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한씨는 생후 3개월 때 앓은 척추 염증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하반신 마비를 앓고 있는 에두아르도(Eduardo·9)군을 찾았다. 만지기만 해도 엉덩이에서 고름이 나올 정도로 욕창이 심했지만 에두아르도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다. 한씨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묻자 에두아르도는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친구를 만나는 것"이라고 답했다. 어머니 마리(Mary·36)씨는 "형편상 비누로 곪은 부분을 매일 닦아주는 게 치료의 전부"라며 연고와 항생제를 건넨 한씨에게 연방 고개를 숙이며 고마워했다. 한씨는 "이렇게 한 번 도와주고 돌아가야 하는 게 가슴 아프다"며 "교육과 의료는커녕 당장 밥이 시급한 이들에게 일자리를 얻게 하는 도움이 절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공동기획: 조선일보사·어린이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