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주보
연중 제16주일.농민주일
2010년 7월 18일 (다해)
<마리아와 마르타 집에 계신 그리스도>
1618년, 디에고 벨라스케즈(Diego Velasquez, 1599-1660), 캔버스에 유채, 60 x 103.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영국
[성화 해설] 어두운 주방 탁자에는 요리에 쓰일 신선한 생선, 계란, 붉은 고추 등 식기구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허름한 차림의 젊은 여인은 절구에 마늘을 찧고, 그녀 뒤의 노파는 무어라 지시를 한다. 정면을 바라보며 잔뜩 인상을 찌푸린 여인은 무언가 관객에게 호소하려는 듯이 보인다. 우측의 주방 너머에는 거실이 보이는데, 앉아있는 그리스도가 말씀을 들려주는 중이고, 그의 발치에는 경청하는 마리아와 그 뒤에는 시중을 드는 마르타의 못마땅한 모습이다. 전경의 주방 장면이 부각되고 성경 장면은 작게 그려 넣은 화가의 숨은 의도가 궁금증을 자아낸다. 성화해설: 박혜원(소피아)
입당송 시편 54(53),6.8
보라, 하느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주님은 내 생명 떠받치는 분이시다. 저는 기꺼이 당신께 제물을 바치리이다. 주님, 좋으신 당신 이름 찬송하리이다.
제1독서 창세 18,1-10ㄴ
화답송 시편 15(14),2-3ㄱ.3ㄴ-4ㄴ.5(⊙ 1ㄱ)
⊙ 주님, 당신의 천막에 누가 머물 수 있으리이까?
○ 흠 없이 걸어가고 의로운 일을 하며, 마음 속 진실을 말하는 이, 함부로 혀를 놀리지 않는이라네. ⊙
○ 친구를 해치지 않으며,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이라네. 그는 악인을 업신여기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존중한다네. ⊙
○ 이자를 받으려 돈놀이 않으며, 죄 없는 이를 해치는 뇌물 받지 않는다네. 이 모든 것 행하는 그 사람, 영원토록 흔들림 없으리라. ⊙
제2독서 콜로 1,24-28
복음환호송 루카 8,15 참조
⊙ 알렐루야.
○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
복음 루카 10,38-42
영성체송 시편 111(110),4-5
당신 기적들 기억하게 하시니,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로우시다.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양식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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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향기]
결국 사랑입니다.
광릉 성당 성준한 바르나바 신부
“필요한 것은 한가지 뿐이다.”라고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에 필요한 그 한 가지는 과연 무엇일까요?
매사에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아이가 한 명 있었습니다. 점심식사 시간에 한 선생님이 그 아이 옆에 앉아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극진한 분이었기에, 아이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마음을 열어보기 위해 애를 쓰셨습니다. 아직 새파란 녀석이 세상을 다산 사람처럼 모든 것에 짜증내는 아이, 뭐라고 말을 붙여도 안 들은 척 딴청을 부리는 아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진심을 담아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순간 아이는 너무도 귀찮았던지 선생님을 확 밀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의자와 함께 뒤로 나가 떨어져버렸습니다. 크게 소리는 났지만 다행히 별로 다친 곳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순간 선생님이 꾹 눌러 참았다는 것입니다. 분노하거나 야단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묵묵히 식사를 마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렇게 조용히 상황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오히려 이젠 그 아이가 전전긍긍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얼굴에는 불안초조해하는 기색이 완연했습니다. 그 다음날 점심시간, 아직도 불안이 채 가시지 않은 아이 옆으로 다시 그 선생님이 다가가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식탁 밑으로 뭔가를 건넸습니다. 아이에게 보내는 간단한 편지였습니다.
“ 00아!, 내가 널 귀찮게 해서 미안해. 난 그저 네가 좋아서, 네 친구가 되고 싶어서 그런 거야. 어제 일은 이제 잊어버리고 앞으로 잘 한번 지내보자.”
선생님의 편지를 받아 펼쳐든 순간, 아이는 너무나 미안하기도 하고 창피했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 편지를 읽는 순간 아이는 도저히 그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는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수돗물을 틀어놓고 한참을 울었답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결국 사랑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삶의 향기]
온갖 삶 속에서 나타나는 분
지혜선 루치아 (방송 작가)
이종사촌동생의 결혼식이 있었다. 식장으로 향하는 그 날은 동생 결혼식의 호사만큼, 20년전 나를 성당으로 이끌어 준 신월동 성당을 간다는 기쁨에 감회가 새로웠다.
교회를 다녔던 나는 주말이나 방학이 되면 외할머니와 두 이모가 다니시던 이곳 성당에서 주일을 맞았다. 성당은 30평 남짓한 컨테이너 박스로 된 가건물 성전에 10평이 채 되지 않는 마당이 전부인 아주 소박하고 단조로운 곳이었다. 성전 안에는 서너 명이 앉을 수 있는 등받이 없는 나무의자가 전혀 초라하지 않았고, 특별히 노인분들을 위해 준비된 대여섯 개의 긴 의자는 용좌처럼 광채가 났다. 주일미사 때 예물에 대한 부담감을 주지 않기 위해 헌금함은 성당 입구에 두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몇 가지 있다. 성가가 울려 퍼져야할 시간에 까막눈인 노인들은 책만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성가 소리는 산 속에서 지저귀는 한 마리의 새소리보다 작았던 어느 미사시간. 신부님은 “성가책을 덮고, 한국 사람 모두의 18번인 ‘아리랑’을 부르자.”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던 사람들도, 성가를 창가로 읊었던 노인들도 일제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성당 안은 아리랑 민요로 우렁찼다.
남다른 신부님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모습이 결코 특별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 기회가 있었다. 이모 집에 신부님과 수녀님이 가정 방문 기도를 오신 날이었는데, 허리가 불편한 이모와 뚜렛(틱)현상을 보이는 사촌동생을 두루두루 살피시는 신부님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기도를 드리려고 무릎을 꿇는 순간, 신부님의 양말과 사제복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꿰매었는지 양말 뒤꿈치는 더 이상 바늘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고, 사제복의 소매단과 사제복은 헝겊으로 덧붙인 곳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노동자들이 많은 이곳에 모두에게 편안한 성전이 되어야 한다며 가건물을 고집했던 신부님, 가난한 본당 식구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아야 직성이 풀리셨던 신부님. 주님과 나 사이의 멘토가 되어주신 신월동 성당 제1대 초대 신부님 송진 발렌티노 신부님이시다.
[윤종식 신부님의 신앙돋보기]
장백의(Alba) - 육신과 영혼의 결백
세례의 순결을 기억하게 하는 장백의는 사제가 미사 때 개두포 위에 입는 발끝까지 내려오는 백색의 긴 옷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과 로마 사람들이 어깨에서 발등까지 내려오는 소매 없는 평상복에서 유래되었으며 후대에 수단을 가리기 위해 길이가 길어졌고 무릎을 꿇을 때 편하도록 폭이 넓어졌다.
장백의는 사제가 미사 때 가져야 할 육신과 영혼의 결백을 상징하며 장백의를 입으면서 사제는 “주님, 저를 결백하게 씻으시어 제 마음을 조찰하게 하시고, 저로 하여금 어린양의 피로 결백하게 되어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제15회 농민 주일 담화문(요약)
“우리는 평화를 일구고 창조물을 보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열다섯 번째 맞이하는 농민 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 1,28) 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창조물에 대한 살림의 책임과 역할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농민들은 바로 우리 인간이 부여받은 살림의 역할에 가장 충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농민들의 현실은 참으로 힘듭니다. 농사지을 땅은 해마다 2만 헥타르씩 산업 용지나 주거단지로 바뀌면서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땅이 줄어들면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이 떨어져 식량부족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특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서울 여의도 면적의 31배 크
기의 농지가 사라지게 되어 방울토마토와 수박, 배추 등의 채소 생산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농촌 인구도 해마다 빠르게 감소하여, 2009년 12월에는 311만 7천 명으로 전 국민의 6.4%에 불과하였습니다. 이렇게 온 국민의 식량을 책임진 농민들이 줄어드는 상황에 4대강 사업으로 인해 24,763명의 농민들이 평생 살아오던 고향을 떠나야하며, 가족까지 포함한다면 6만 5천 명 가량이 농촌을 등지고 떠나야 합니다.
교황님께서는 올해 초 ‘세계 평화의 날 메시지’를 통해 “광활한 농촌지역의 황폐화와 생산량 감소”(4항)를 우려하셨습니다. 그리고 더욱 구체적으로 농업과 농민들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려면 “소농들과 그들의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적절한 농촌개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10항).”고 하셨고, “농업과 산업의
생산형태를 촉진하려면 순전히 소비 중심적인 심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10항)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날이 줄어드는 농지와 식량문제에 4대강 사업까지 겹쳐 더욱더 힘겨워진 우리 농업과 농촌, 농민들을 살리는 길은 소비 중심적 생활에서 벗어나 ‘생태적 생활양식’을 선택하는 길입니다. 먼저 도시 성당에서 농민들이 정성껏 농사지은 생명의 먹을거리를 기꺼이 받아 모시며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교회가 지난 15년 동안 전개하고 있는 나눔과 섬김의 운동인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길입니다.
오늘 농민 주일을 맞아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땅을 일구며 땀 흘려 생명농사를 실천하고 있는 우리 농민들을 기억하며, 창조주 하느님과 우리 농민들이 함께 일구는이 생명과 평화의 노력을 기억하고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농부이신 아버지 하느님의 축복이 늘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기도드립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 용 훈 주교
[이 주간의 말씀과 생활]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루카 10,41~42)
<있으나 마나 한 존재>
어떤 열심한 신자가 죽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보고 아마도 임종하자마자 즉시 천당에 갔을 것이라고 말하며, 생전에 열심히 했던 그의 기도와 자선 생활을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천당에 가지 못했고, 일생 동안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던 그는 하느님께 외쳤습니다. “일생 동안 잘못한 일도 없는데 왜 제가 천당에 가지 못합니까? “그래, 너는 일생 동안 어떤 나쁜 일도 한 적이 없다. 그러니 너는 땅에서도 있으나마나 한 존재였다. 너는 다만 로봇에 불과 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그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닙니다. 우리가 되풀이만을 계속하는 것은 마치 죽어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단순한 반복 동작은 결코 사람들을 도울 수 없습니다. 반복되는 기도는 우리들 자신이 그 속에 들어있지 않는 단순한 행위, 껍질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는 병들고 약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을 위해 봉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의 행동이 기계처럼 아무런 지향도 없이 행위만을 되풀이 할 뿐이라면 정해진 법칙에 의해 조작되는 컴퓨터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생활 실천]
◆ 자기 신앙생활 중 활동과 기도생활의 비중이 어느 쪽이 더 높은지 생각해보고, 균형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함께하는 세상]
우리생명 농산물
4,000년을 이어온 농업이 산업화와 더불어 급격히 황폐화되고 있는데요. 과도한 화학비료와 농약 때문입니다. 단위면적당 소출을 높이려고 또는 편리한 경작방법을 택하기 때문인데요. 가톨릭농민회의 생명농업은 우리가 아직도 기억하는 옛 방식대로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사이짓기, 돌려짓기를 통해 지속적으로 건강한 땅에서 생명농산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요.
지속가능한 유기순환형 농사, 이것이 이제부터의 4,000년을 이어 우리 터에서 생명을 길러낼 수 있게 합니다. 우리 생명농산물을 선택하는 것이 어렵지만 꿋꿋이 생명농사를 짓는 가톨릭농민들에게 지지가 되고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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