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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너머 북한 동포에게 가는 길

namsarang 2010. 7. 18. 17:43

[강천석 칼럼]

김정일 너머 북한 동포에게 가는 길

  • 강천석 주필

 

강천석 주필

통일의 결정적 순간, 북한 동포가 우리 손 잡도록
곳간 넘쳐 사료로 쓴다는 쌀용도 더 고민해야…

천안함북한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한 지 113일이 됐다. 우리 사회는 벌써 그날 밤 그 바다를 까맣게 잊은 채 살고 있다. 슬픔과 아픔과 분함은 이제 고스란히 마흔여섯명 장병 유족의 어깨에 얹혔다. 우리 손에는 천안함을 공격한 '누군가'를 규탄한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 성명 한 장이 들려 있을 뿐이다. 이것이 한국 외교 역량의 최대치(最大値)이자 한국의 동맹국 미국 영향력의 한계라고 한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에겐 전몰(戰歿)장병들의 죽음을 보다 가치 있는 죽음으로 만들 책임이 있다. 역사를 전진시키는 죽음이 가치 있는 죽음이다. 역사를 전진시키는 출발점은 두려움 없이, 환상(幻想) 없이, 아집(我執) 없이, 편견 없이 사태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북한을 이렇게 응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60여년 동안 한국·중국·일본을 연구하며 '한국공산주의 운동사'를 비롯한 38권 저서와 500여편 논문을 써낸 미국의 대표적 동아시아 전문가다. 그는 중동이나 아프리카가 아니라 동아시아를 전공으로 택한 덕분에 희망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게 됐다고 했다. '동아시아의 독재자들은 실용주의적 경제 개발정책을 펼친 다음 정치적 민주화로 나아가 결국 세계의 흐름에 합류(合流)하더라'는 자신의 학문적 경험담을 그 이유로 들었다. 예외(例外)가 북한이다.

북한은 전문가들의 무덤이기도 하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한국의 북한 전문가들이 여러 차례 일본에 건너와 북한의 미래를 전망하는 강연회를 열었다. 강연 내용은 대동소이(大同小異)했다. '북한이 내일, 내주, 내달, 내년에 붕괴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수십만이 굶어 죽는 대기근(大饑饉)을 겪고, 전기 자동차가 달리는 21세기에 연기 폭폭 나는 목탄차(木炭車)를 몰면서 성능도 좋지 않은 잠수정을 타고 침투해 천안함을 공격했다.

대한민국은 박정희 시대 이래 수십년간 '세계사의 예외이고 예측 불가능한 북한'을 상대로 '대결과 대화' '강경과 유화(宥和)' '채찍과 당근' '바람과 햇볕' 정책을 번갈아 펴왔다. '대결·강경·채찍·바람'의 목표는 상대의 호전적(好戰的) 태도가 우리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지 않게 사전에 억지(抑止)하는 것이다. 반면에 '대화·유화·당근·햇볕'은 상대의 호전적 태도를 언젠간 평화적으로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근거로 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 두 갈래 대북정책 모두 의도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북한은 대결 시대에는 무장공비를 내려 보내 청와대를 공격했고, 햇볕 시대엔 연평 해전에서 우리 함정을 선제공격했다.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비용'과 '평화를 사들이는 비용'이 그리 큰 차이가 있지도 않았다. 안 주면 판을 엎거나 중국 쪽으로 기울고 주면 줄수록 더 내놓으라고 떼를 부리는 부작용도 엇비슷했다. 강경 정책은 우리 내부의 정치·사회 분위기까지 함께 얼어붙게 만들었고, 햇볕정책은 북한을 바꿔놓기에 앞서 남쪽을 먼저 방심(放心)과 해이(解弛) 쪽으로 몰아갔다.

결과적으론 이것이 북한에게 지금 불편하다 해도 다른 정권·다른 정책이 나오기까지 기다리면 된다는 습관을 심어주었다. 냉전 시대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대소(對蘇)정책을 달리했지만 양당 간에 '최소(最小) 합의'가 존재했다. 소련이 마냥 다음 정권 다음 정책만을 기다릴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이제 대북정책의 근본 목표가 생존 본능에 매달려 버둥대는 김정일 정권을 넘어서서 한 발짝이라도 더 북한 동포에게 다가가는 것이라는 '최소 합의'를 만들어 내야 한다. 더디더라도 이 길 말고는 달리 길이 없다.

스탈린은 1941년 6월 히틀러의 탱크가 소련 국경을 돌파해 공격해왔다는 보고를 받고 '레닌이 세운 나라가 이렇게 사라지는구나'하고 중얼댔다고 한다. 그러나 1991년 12월 25일 낫과 망치가 그려진 소련 국기가 크렘린궁 국기게양대에서 사라진 것은 미국 탱크에 밀려서가 아니라 소련이 제풀에 주저앉고 말았기 때문이다. 동독의 운명도 그렇게 결정됐었다. 김정일의 나라도 언젠가 그 길을 밟아 갈 것이다. 그 '진실의 순간'에 북한 동포가 현상 유지와 중국 의존의 유혹을 뿌리치고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의 손을 붙잡을 수 있도록 지금 길을 닦아야 한다. 더 이상 쌓고 쟁길 곳이 없어 가축의 사료를 쓰겠다는 말까지 나도는 남는 쌀의 사용 방법을 한 번 더 고민할 때다. 천안함 사과도 북한을 탁자 너머 의자에 앉힌 다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