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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금 먹는 하마' 지방 개발

namsarang 2010. 7. 17. 11:07

[지방정부가 국가재정 거덜낸다]

[2] '세금 먹는 하마' 지방 개발

특별취재팀
김기훈 기자 khkim@chosun.com
이진석 기자 island@chosun.com
방현철 기자 banghc@chosun.com
정원석 조선경제i 기자 lllp@chosun.com
이새누리 조선경제i 기자 newworld@chosun.com

[시·구청사 이어 호화 논란]
주민 1만8000명에 300억짜리 옹진군청… 1인당 면적, 서울시청의 91배
전북 임실군… 재정 자립도는 10%인데 신청사 건축에 265억원
대전 동구청… 707억원짜리 건물 짓다가 예산부족으로 공사중단

인천시 남구 용현 5동의 옹진군청. 청사 본관 오른편에는 '효심관'이라는 별관이 있다. 주민들을 위한 편의시설로 지어졌지만 주민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강당은 예식장으로도 쓴다지만 지난해 단 4건의 결혼식이 있었다.

100개의 섬으로 이뤄진 옹진군은 모든 군민이 섬에 살고 있지만, 군청은 육지에 있어 오가기가 불편하다. 군민 이 모 씨는 "군청 일을 보기 위해 뭍으로 나오려면 하루 생업을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물리 치료와 방사선검사실까지 갖춘 군청 보건실은 주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인천시 남구에 위치한 옹진군 청사는 연면적이 1만4984㎡(약 4530평)로, 주민 1인당 청사 면적이 공사 중인 서울시 신청사의 91배에 이른다. /인천=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취재진이 지난 9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민원실을 방문한 주민을 세어봤더니 고작 4명에 불과했다. 정작 군청이 처리하는 업무는 용현 5동 주민들의 민원이 더 많았다.

군청은 지을 때부터 잡음이 많았다. 245억원이던 설립 자금은 부지 매입 비용 등이 추가되면서 300억원을 넘어섰다. 재정자립도(전체 예산에서 지방세 등 스스로 마련한 재원의 비율)가 20%대인 옹진군에는 버거운 사업이었다.

2006년 완공 이후 3년간 청사 유지비는 총 34억원(구 청사 개·보수 비용 등 포함)에 달한다. 유지비와 운영비는 계속 불어나는 추세다.

옹진군 인구는 1만8000명 정도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두 번째로 적지만, 청사 면적은 1만4984㎡(약 4530평)에 달한다. 주민 1인당 면적으로 따지면 서울시가 짓고 있는 신청사의 91배나 된다. 주민들 사이에선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군청인지 모르겠다. 군청 직원들이 편해지려고 시내에 지어놓은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온다.

대전 동구는 지난달 예산 부족으로 신축청사 공사를 중단했다. 707억원이나 투입되는 청사 공사를 벌인 탓에 직원 월급조차 주기 어려울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전=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지방자치단체들의 '호화 청사' 바람은 시청, 구청을 거쳐 옹진군의 사례처럼 군청으로 번져 있는 상태다.

전라남도 신안군은 163억원을 들여 새 청사 공사를 진행 중이고, 전라북도 임실군은 265억원을 들인 청사를 최근 완공했다. 두 군(郡)은 모두 재정자립도가 10%대 초반에 그친다. 신안군과 임실군의 새 청사는 주민 1인당 면적이 전남도청에 비해 6배, 10배나 넓다.

이처럼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이 큰 예산을 들여 청사를 짓게 되면 지방재정은 더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아방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던 호화 청사를 지은 성남시청은 최근 지급유예(모라토리엄) 공방에 휩싸였다. 대전 동구청은 707억원짜리 신청사를 짓다 예산 부족으로 공사를 중단한 상태다. 재정자립도가 12.2%에 불과한 상태에서 일을 벌여 구청 직원들의 월급도 못 줄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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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후지역 돕는다며 마을회관 바로 옆에 '어업인회관'… 관리비도 못내 횟집으로 운영

특별취재팀

[지방정부가 국가재정 거덜낸다] [2] '세금 먹는 하마' 지방 개발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평산1리는 70여가구가 사는 조그만 어촌이다. 이 동네에는 마을회관 2개가 있다. 원래 마을회관이 하나 있었는데 2008년 10월 남해군이 정부 지원을 받아 '어업인회관'을 지었다.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주민편의 시설이다. 두 회관은 걸어서 약 1분 거리에 있다.

어업인회관을 짓는 데 들어간 돈은 3억원. 지난 12일 오전 평산1리 어업인회관에는 '횟집' 간판이 걸려 있었다. 어업인회관을 지어놨는데도 텅텅 비는 날이 많자, 어촌계는 관리비(한달 평균 50만원) 부담을 덜기 위해 이 건물을 아예 횟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경남 남해군이 2008년 10월 평산1리에 지은 어업인회관. 걸어서 1분 거리에 마을회관이 있어 어업인회관을 찾는 주민이 별로 없자 관리비 충당을 위해 1층을 횟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새누리 조선경제i 기자 newworld@chosun.com
이수현 어촌계장은 "작년 2월 군청에서 횟집으로 용도를 변경해도 된다는 승인을 받았는데 올해 1월 감사원에서 어업인 회관으로 사용하라는 통보를 받았다"면서 "그렇게 되면 관리비를 충당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 횟집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인근 창선면 광천리도 2008년에 마을회관을 지어놓고 그해에 어업인회관을 또 만들었다. 이 마을 주민은 "어촌계 회의도 1년에 2번뿐이라 어업인회관은 거의 놀리고 있다"고 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1994~2008년까지 어촌종합개발사업을 시행하면서 전국 어촌 곳곳에 어업인회관·경로당·어촌계회의실 등을 만드는 데 216억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남해군처럼 마을회관과 기능이 중복된 시설을 지은 경우가 많아 세금 낭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9일 강원도 화천군 화천군도(郡道).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5시간 동안 거례리와 삼화리를 잇는 널찍한 왕복 2차선 도로를 이용한 차량을 세어봤다. 모두 8대에 불과했다. 차가 다니지 않는 '유령 도로'인 셈이다.

이 도로는 강원도 화천군이 1997년 9월 강원도로부터 '화천 온천관광지 조성계획'을 승인받으면서 생겼다. 용화산 입구에서 유황 온천이 솟자 화천군이 온천관광지 개발을 추진한 것이다. 온천사업의 타당성을 충분히 연구하지도 않고 거례리와 삼화리를 잇는 4.47㎞의 도로를 먼저 닦기 시작했다. 2000년 3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8년간 이 도로가 건설됐고, 국토해양부의 지원하에 국비 81억7000만원이 투입됐다.

한때는 개발 소문이 돌면서 투자자들이 와 보지도 않고 주변 논밭을 사들였다. 하지만 정작 온천사업 투자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자고 나면 오르는 땅값 때문에 민자(民資) 유치는 점점 힘들어졌고 그러는 사이 12년이 흘렀다. 결국 시간만 낭비하면서 온천관광지 조성계획 승인도 효력을 잃게 됐다. 닦아놓은 도로만 덩그러니 남았다.

남해군과 화천군의 사례 모두 중앙 정부와 지자체 간 소통 부재와 경직된 지원 체계 때문에 빚어진 세금 낭비에 해당된다. 정부의 낙후지역개발사업은 공단 유치 등 산업화가 뒤처진 지역을 개발한다는 목적으로 진행됐다. 2006년 이후 지금까지 주요 사업에 들어간 사업비만 13조37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지원이 부처별로 제각각 이뤄지고, 비슷한 사업에 대해서도 중앙 부처-도-시·군의 소관 부서와 과(課)가 각각 달라 일관된 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민재 국회 예산정책처 분석관은 "각 사업들이 체계적인 연계성 없이 추진되면서 사업대상 지역이나 성격이 중복되고 있다"며 "특정 지방자치단체가 유사한 사업에 대해 여러 부처에서 중복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예산이 낭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