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가 국가재정 거덜낸다] [2] '세금 먹는 하마' 지방 개발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평산1리는 70여가구가 사는 조그만 어촌이다. 이 동네에는 마을회관 2개가 있다. 원래 마을회관이 하나 있었는데 2008년 10월 남해군이 정부 지원을 받아 '어업인회관'을 지었다.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주민편의 시설이다. 두 회관은 걸어서 약 1분 거리에 있다.어업인회관을 짓는 데 들어간 돈은 3억원. 지난 12일 오전 평산1리 어업인회관에는 '횟집' 간판이 걸려 있었다. 어업인회관을 지어놨는데도 텅텅 비는 날이 많자, 어촌계는 관리비(한달 평균 50만원) 부담을 덜기 위해 이 건물을 아예 횟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 ▲ 경남 남해군이 2008년 10월 평산1리에 지은 어업인회관. 걸어서 1분 거리에 마을회관이 있어 어업인회관을 찾는 주민이 별로 없자 관리비 충당을 위해 1층을 횟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새누리 조선경제i 기자 newworld@chosun.com
농림수산식품부는 1994~2008년까지 어촌종합개발사업을 시행하면서 전국 어촌 곳곳에 어업인회관·경로당·어촌계회의실 등을 만드는 데 216억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남해군처럼 마을회관과 기능이 중복된 시설을 지은 경우가 많아 세금 낭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9일 강원도 화천군 화천군도(郡道).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5시간 동안 거례리와 삼화리를 잇는 널찍한 왕복 2차선 도로를 이용한 차량을 세어봤다. 모두 8대에 불과했다. 차가 다니지 않는 '유령 도로'인 셈이다.
이 도로는 강원도 화천군이 1997년 9월 강원도로부터 '화천 온천관광지 조성계획'을 승인받으면서 생겼다. 용화산 입구에서 유황 온천이 솟자 화천군이 온천관광지 개발을 추진한 것이다. 온천사업의 타당성을 충분히 연구하지도 않고 거례리와 삼화리를 잇는 4.47㎞의 도로를 먼저 닦기 시작했다. 2000년 3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8년간 이 도로가 건설됐고, 국토해양부의 지원하에 국비 81억7000만원이 투입됐다.
한때는 개발 소문이 돌면서 투자자들이 와 보지도 않고 주변 논밭을 사들였다. 하지만 정작 온천사업 투자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자고 나면 오르는 땅값 때문에 민자(民資) 유치는 점점 힘들어졌고 그러는 사이 12년이 흘렀다. 결국 시간만 낭비하면서 온천관광지 조성계획 승인도 효력을 잃게 됐다. 닦아놓은 도로만 덩그러니 남았다.
남해군과 화천군의 사례 모두 중앙 정부와 지자체 간 소통 부재와 경직된 지원 체계 때문에 빚어진 세금 낭비에 해당된다. 정부의 낙후지역개발사업은 공단 유치 등 산업화가 뒤처진 지역을 개발한다는 목적으로 진행됐다. 2006년 이후 지금까지 주요 사업에 들어간 사업비만 13조37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지원이 부처별로 제각각 이뤄지고, 비슷한 사업에 대해서도 중앙 부처-도-시·군의 소관 부서와 과(課)가 각각 달라 일관된 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민재 국회 예산정책처 분석관은 "각 사업들이 체계적인 연계성 없이 추진되면서 사업대상 지역이나 성격이 중복되고 있다"며 "특정 지방자치단체가 유사한 사업에 대해 여러 부처에서 중복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예산이 낭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