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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공격을 국제형사재판소로

namsarang 2010. 7. 21. 08:39

[해외시론]

천안함 공격을 국제형사재판소로

  • 제리드 겐서(Jared Genser)변호사·프리덤 나우 대표
  • 정리=이태훈 기자
제리드 겐서(Jared Genser)변호사·프리덤 나우 대표

무의미한 안보리 성명… 46명한국 병사와 가족이
정의의 실현을 볼 길은 없는 것인가…
김정일을 독재자 아닌 범죄자로 기소해야

한국 해군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침몰 사건의 책임이 북한에 있다는 보고서가 나오자, 한국 정부는 곧바로 유엔 안보리에 북한을 지목해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국 정부는 또 공식적으로 북한에 사죄를 요구했고, 유엔에는 '적절한' 행동을 취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 9일 한국 정부는 깊이 실망했을 것이다. 안보리는 무의미한 의장 성명에서 이번 공격의 책임이 북한에 있다고 명백히 명시하는 데 합의하지 못했다. 또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인지도 밝히지 못했다. 북한의 신선호 유엔 주재 대사는 이번 의장 성명을 "위대한 외교적 승리"라고까지 했다.

천안함에서 살해된 장병의 가족들이 정의가 실현되는 걸 볼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한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는 이번 사건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할 수 있다. 천안함 공격을 명령하고 실행한 자들을 정해진 절차에 따라 조사해 기소하도록 하는 것이다. 국제형사재판소에서 기소 가능한 전쟁 범죄 중에는 "상대 국가 혹은 군대에 소속된 개인을 속여서 살해한 죄"가 있다. 전쟁에서 기습 공격은 종종 사용되는 전술이다. 따라서 기습공격 자체를 속임수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남북한 간에 가끔 소규모 충돌이 있긴 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휴전이 유효하다고 믿었다. 북은 한국을 속인 것이다. 전쟁에 관한 국제 법규들은 명확하다. 휴전을 깨려면 상대방에게 먼저 통보해야만 한다.

한국은 국제형사재판소 설치에 관한 '로마 규정(Rome Statute)'을 비준한 나라다. 이번 사건을 국제 법정에 가져가는 데 법적인 문제도 없다.

물론 국제 법정에 가더라도 실제로 정의를 구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천안함 침몰의 책임을 물어 누군가를 기소하려면 실체적 증거가 필요하다. 천안함 사건 보고서는 북한의 짓이라는 증거가 확정적이라고 밝혔지만, 국제형사재판소는 국가가 아니라 개인만 기소할 수 있다. 따라서 정말로 누가 최종 책임자이며 어떤 명령 체계를 거쳤는지 밝힐 수 있는 정보가 더 요구될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문제도 있다. 그동안 국제형사재판소는 한 사건에 대한 조사를 마치는 데 여러 해가 걸렸다. 조사 과정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할 증거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일은 해외로 여행하는 일이 아주 드물다. 그의 신병을 제때 확보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려움이 있다 해도 천안함 사건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바람직하다. 일단 조사가 시작되면 김정일은 단순한 독재자가 아니라 국제 범죄 혐의자로 규정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수사(修辭)적 전환이다. 김정일에게는 벌써 그런 딱지가 붙었어야 했다. 최근 수년간 국제사회는 북핵 문제에 우선적 관심을 기울였다. 그동안 북한의 현실은 처참했다. 많은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었다. 거대한 강제 노동 수용소에 여전히 정치범 20만명이 갇혀 있다.

천안함 사건을 논외로 하더라도 김정일이 북한 주민들에 대해 반(反)인도주의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데 대해선 의심할 여지가 거의 없다. 김정일을 예측하기 어렵고 교활하지만 의지가 강한 독재자로, 또 협상해야 할 상대로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의 범죄자적 측면에 다시 주의를 집중시켜야 한다.

김정일은 병들었다. 어떤 형태로든 정의의 심판을 받기 전에 몇 해 지나지 않아 자연사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고난과 김정일이 최근 한국에 저지른 행위를 생각해 보라. 일단 국제법 절차가 시작되면 북한 체제 내부에도 자신의 장래 안위를 걱정하는 이들이 생겨날 수 있다. 이들과 김정일의 사이는 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라도 김정일의 종말을 조금이나마 앞당길 수 있다면, 북한 사람들과 세계에는 이로운 일이다.

 

☞ 겐서 변호사는 미국에서 활동하며 전 세계 양심수 석방을 위해 일하는 시민단체 ‘프리덤 나우’의 회장을 맡고 있다. 체코 하벨 대통령, 미얀마 아웅산 수치 여사, 남아공 투투 주교 등을 변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