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허술한 감시자, 지방의회
처음에 전액 삭감된 예산, 선거 앞두고 슬쩍 통과
심의 때는 "결산할 때 보자"… 결산 땐 남은 예산 확인 급급
작년 12월 부천시 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 부천시 상동 굴포로변에 '명품거리'를 조성하기 위한 예산으로 7억원(나무 가격과 인건비 포함)을 배정한 안건이 올라왔다.안건의 주요 내용은 굴포로변 2㎞에 70그루 안팎의 소나무를 더 심겠다는 것이었다. 원래 여기엔 소나무 69그루가 있었다. 소나무를 촘촘히 심어 '명품거리'를 만들겠다는 것이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의 계획이었다. 소나무 1그루 가격은 600여만원. 하지만 이 안건은 반대에 부딪혔다.
- ▲ 경기 부천시 원미구 상동 굴포로 일대에 조성된 소나무길. 부천시의회는 작년 말 가로수로 부적당한 소나무를 심는 것은 옳지 않다며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했지만, 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추경예산을 짜서 7억원의 소나무길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그러다 올해 3월 임시의회에서 이 안건은 슬그머니 추경예산에 편성돼 통과됐다. 당시 지방선거(6월 2일)를 앞두고 지방의회 의원들이 눈 감아준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김선환 참여예산부천시민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부천시민들의 편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목적이라면 중동에 있는 시민회관 보수공사가 훨씬 더 시급하다"며 "(명품거리 같은) 선심성 예산사업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의회를 통과하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광역지자체 의원들은 평균 5300만원, 기초자치단체 의원들은 평균 3400만원의 의정비를 받는다.
지방의원들이 국민세금을 받고 일하면서 지자체가 세금을 낭비하는 일을 방조하거나 앞장서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거, 공무원이 일 좀 해보겠다고 열심히 짜 왔는데 그냥 통과시켜 줍시다."
경기도의회 의원을 지낸 장윤영씨는 지방의회의 예산심의가 진행되는 연말이면 의원들 사이에서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다고 했다. 장씨는 "예산 심의 때는 '결산 가서 제대로 보면 되지'라고 하고, 정작 결산에 가서는 예산사업의 성과는 제쳐두고 남은 예산이 없는지 영수증만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방의회 의원들이 서로 잇속을 챙기면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예산심의를 한다는 얘기다.
지방의원들이 자기들 모임과 직결된 예산에 대해선 아예 눈을 감아버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원은 2004년 지자체 전·현직 의원들의 친목모임인 '의정회'에 지자체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현재 울산시를 제외한 15개 광역자치단체에서 의정회에 지자체 예산을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의 조례가 버젓이 남아있다.
[지방정부가 국가재정 거덜낸다] 기사 모두보기 ☞ 인사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