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窓)/이런일 저런일

"군대 가서 죽이는 거 배워와… 뭘 지키겠다는 거예요"

namsarang 2010. 7. 26. 23:34

[오늘의 세상]

"군대 가서 죽이는 거 배워와… 뭘 지키겠다는 거예요"

EBS 언어영역 '1타(1등)' 女강사, 軍 비하 발언 파문
문제 동영상 4개월 방치한 EBS 검증 시스템도 문제
강사 퇴출… 다시보기 삭제 네티즌 '軍殺女' 별명 붙여

 
66만명 대입 수험생이 시청하는 EBS(한국교육방송)의 수능 동영상 강의에서 현직 고교 교사인 스타 여강사가 군(軍)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 이 동영상은 EBS 인터넷 홈페이지에 4개월 넘게 떠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공교육 방송'을 자임하고 나선 EBS의 검증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EBS는 25일 곽덕훈 사장 주재로 긴급 경영회의를 열고, 동영상 강의 중 군 복무에 대해 부적절한 표현을 한 언어영역 강사 장모(38·서울 H고 교사)씨의 수능 강의 출연을 즉각 중단시키기로 했다. 또 곽 사장 명의의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재발 방지와 관계자 문책을 약속했다. 동영상 다시보기는 수능을 앞둔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해 당분간 존치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날 저녁 홈페이지에서 삭제한 상태다.

EBS 언어영역 강사인 장모씨가 동영상 강의 도중“군대 가서 뭐 배우고 와요?”라고 물은 뒤 손가락으로 권총 모양을 만들면서“죽이는 거 배워오죠”라고 말하고 있다. /EBS 화면
"군대 가서 죽이는 거 배워온다"

문제의 강의 동영상은 지난 3월 8일 EBS 스튜디오에서 녹화돼 3월 11일 EBS 수능강의 홈페이지인 'EBSi'에 올라온 '언어영역 45강 언어, 생활1'이다. 이 동영상에서 장씨는 '언어변화'에 대해 설명하던 중 "남자들은 군대 갔다 왔다고 좋아하죠. 그죠? 또 자기 군대 갔다 왔다고 뭐 해 달라고 만날 여자한테 떼쓰잖아요"라고 말했다.

장씨는 이 대목에서 "군대 가서 뭐 배우고 와요?"라고 방청석의 학생들에게 물은 뒤 손가락으로 권총 모양을 만들면서 "죽이는 거 배워 오죠"라고 말했다.

이어 "여자들이 그렇게 힘들게 낳아 놓으면 걔(남자들 지칭)는 죽이는 거 배워 오잖아요. 그럼 뭘 잘했다는 거죠, 도대체가. 자, 뭘 지키겠다는 거예요. 죽이는 거 배워오면서. 걔가 처음부터 그거 안 배웠으면 세상은 평화로워요"라고 말했다. 2007년부터 EBS 강사로 활동해 온 장씨는 언어영역에서 '1타(1등)'로 불리는 스타 강사다.

이 강의 동영상은 지난 24일 오후 네티즌 사이에서 급속히 전파돼 EBS 시청자 게시판에 수백 건의 항의 글이 올랐다. 네티즌들은 "아무리 우스갯소리라고 하더라도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이렇게 비하할 수 있느냐" "당신 같은 사람을 지키느라 내 청춘을 바친 게 후회된다"며 거세게 반발했고, 일부에선 '군대에선 죽이는 걸 배운다'는 장씨의 말을 비꼬아 '군살녀(軍殺女)'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장씨의 미니홈피와 그가 속한 H고의 웹사이트가 해킹당했고 누군가 장씨의 이름으로 글을 올리는 일도 빚어졌다.

EBS "모니터링했지만 못 걸러내"

문제는 장씨의 부적절한 발언이 전혀 걸러지지 않은 채 수험생들이 보는 EBS 동영상으로 올랐다는 사실이다. 지난 3월 교과부가 사교육을 억제할 목적으로 'EBS 강의·교재의 수능 연계율을 70%까지 올리겠다'고 밝힌 뒤 EBS 강의의 주문형비디오(VOD) 클릭 건수와 다운로드 건수의 1일 평균은 59만건에서 139만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장씨의 강의는 TV 방송 전파를 타지 않고 인터넷에만 올라 있으나, 교육 전문가들은 "사실상 본방송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TV로 방송되지 않고 인터넷에만 띄우는 동영상들도 대부분 EBS가 자체 인력과 장비를 동원해 제작하는 프로그램인 데다, 대다수의 수험생이 TV 방송보다는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EBS 수능 강의를 시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영상 강의에 대한 EBS의 검증 시스템은 취약했다. EBS 관계자는 "현재 해당 프로듀서(PD)와 책임프로듀서(CP)가 2단계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강의 내용을 일일이 검증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BS는 심의부서가 3차 모니터링을 하는 대책을 마련했으나 한 해 2만8000편의 강의를 모두 검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사자인 장씨는 25일 EBS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고 "강의 분위기에 취해 해서는 안 될 말을 해 버렸다"며 "많은 남성분과 그분들의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했다. 일각에선 장씨가 2005년 충북 모 여고 근무 당시 전교조 소속으로 '교원평가 저지 분회장 선언'에 참여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재는 전교조 조합원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