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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축구팀 사상비판

namsarang 2010. 7. 28. 22:49

[만물상]

북한 축구팀 사상비판

 

 

1970년대 말 북한 인민여배우 우인희가 승용차 안에서 북송 재일동포 청년과 사랑을 나눈 뒤 배기가스에 쓰러진 채 발견됐다. 남자는 죽었지만 우인희는 살아남아 사상투쟁회의에 넘겨졌다. 그는 자아비판은커녕 정권 유력인사들에게 성(性) 상납을 해왔다고 폭로하며 정면으로 맞서다 끝내 공개 총살당했다.

▶김일성종합대 학생들은 수업은 빼먹어도 두어 달에 한 번 열리는 사상투쟁회의에는 '재미있는 일이 많아' 꼭 간다고 한다. 어느 날 한 남학생이 약혼자에게 일방적으로 파혼을 통보했다가 사상투쟁회의에 서게 됐다. 자아비판을 듣고 난 총장이 "그래서 (약혼자와) 살겠다는 건가 안 살겠다는 건가"라고 다그치자 남학생은 "살겠습니다"라고 고함쳤다. 회의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8강 신화를 썼던 북한 대표팀이 귀국했을 때는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2년 뒤 김일성이 갑산파를 숙청하면서 불똥이 선수들에게 튀었다. 갑산파가 월드컵 성과를 자기네 업적으로 내세웠던 탓이다. 선수 대부분이 사상투쟁회의에서 자아비판을 한 뒤 함경북도 시골로 추방됐다. 선수들은 "8강전 포르투갈 경기를 앞두고 외국여자들과 잠자리를 해 힘이 빠져 역전패했다"는 누명까지 둘러써야 했다.

▶사상투쟁회의는 말·행동·사고방식의 잘못을 털어놓고 자아 또는 상호 비판을 하도록 하는 주민통제장치다. 올해 44년 만에 남아공월드컵에 나갔지만 전패(全敗)한 북한 축구팀이 사상투쟁회의에 회부됐다고 자유아시아방송이 보도했다. 참석자들이 김정훈 감독과 선수들을 비판했고 끝무렵엔 선수들도 한 명씩 김 감독을 비판했다고 한다. 김 감독이 당에서 쫓겨나 평양 건설현장 근로자로 '하방(下放)'됐다는 소문도 있다. 월드컵 성적을 김정일 아들 정은의 공(功)으로 포장해 후계 굳히기에 써먹으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거꾸로 김 감독을 희생양 삼을 모양이다.

▶김 감독은 월드컵 기간 "장군님(김정일)이 개발한 눈에 안 보이는 휴대전화를 이용해 장군님으로부터 직접 전술 조언을 받고 있다"고 했다. 북한이 포르투갈전에서 공격 일변도로 나가다 7대0으로 지자 전문가들은 "수비형인 김 감독 전술이 아니다. '김정일 감독'이 눈에 보이지 않는 휴대전화로 엉뚱한 지침을 준 모양"이라고 했었다. 주체(主體)의 나라에선 감독을 맡는 것도, 선수 노릇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