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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풍 교사' 퇴치법

namsarang 2010. 8. 18. 22:13

[동서남북]

 '오장풍 교사' 퇴치법

 

         강경희 경제부 차장대우
파리 특파원 시절, 파리 외곽 국제학교에 다니던 초등학생 아들이 하굣길 스쿨버스에서 친구들과 장난치다가 그중 한 아이가 가벼운 부상을 당한 적이 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냥 또래끼리 장난친 게 아니었다. 같은 학교 중학생들이 욕설까지 섞어 낄낄대며 버스 안에서 초등학교 3학년생들에게 격투기를 시킨 것이었다. 학교측도 모르는 학교 밖 소동을 내 입으로 떠벌려 아들에게 벌을 자초(自招)할 필요가 있을까 고민했는데, 앞으로 더 나쁜 상황을 막으려면 알리는 게 좋겠다 싶었다.

다음날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전날 일을 설명했는데 이후 벌어진 담임과 학교의 대응이 놀라웠다.

세 아이 그리고 각 아이의 담임들이 즉각 상담 교사실에 모였다. 상담 교사는 세 아이에게 각자 상황을 설명하게 했다. 아이들의 기억이 불완전하거나 자기 중심적이라 말이 조금씩 달랐는데도 교사들은 "왜 거짓말하느냐"는 둥 아이들 말을 자르거나 섣불리 심판하지 않았다. 세 아이 말을 서로 끝까지 경청(傾聽)하게 만든 다음,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지적해 주었다. "잘못된 지시에 '노(No)'하지 않은 것은 네가 책임져야 할 잘못"이라며 부모나 교사가 아닌 사람의 말에 함부로 따르지 않겠다는 반성문을 사흘간 쓰게 했다. 벌 받는 과정 자체가 '학습'이었다.

중학생들은 그보다 강도 높은 벌을 받았다. 스쿨버스에 동승한 지도요원도 '저학년과 고학년을 따로 앉히라는 학교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강력한 경고를 받았다. 학부모의 작은 문제 제기에, 학교 전체가 적극 움직이는 걸 보고 학교와 교사에게 무한한 신뢰를 갖게 됐다.

그걸 계기로 '좋은 학교' '선진 사회'가 무엇인지도 다시 생각했다. 사람 사는 곳에 별별 사람, 별별 일이 다 있으니 좋은 학교, 선진 사회라고 해도 문제와 갈등이 없는 '무균 지대(無菌地帶)'는 아니다. 문제가 터졌을 때 빨리 해결해 더 큰 문제를 막으려는 의지와 시스템이 작동하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문제 제기나 갈등 자체를 문제시하는 경향이 여전히 강하다. 문제를 쉬쉬하고 숨기기에 급급하다. 그러다 보니 결국은 더 커져서 터진다. 억울한 피해자가 인터넷을 통해 여론에 호소하면 문제의 장본인은 전 국민의 공적(公敵)이 되는 식이다.

얼마 전 초등학생 폭행 동영상이 공개돼 전국에 '체벌 금지' 후폭풍을 몰고온 '오장풍 교사' 사태도 그렇다. 사실 그 지경에 이르기까지 오 교사의 지나친 행동을 제어하는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지속되는 폭행에 참다못한 학부모들이 항의했는데도 교장은 "자꾸 문제 제기하면 아이들에게 꼬리표가 붙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뭉개버렸다. 때린 교사도 문제지만 손 놓고 있는 교장도 문제다. 아이들 눈에도 심한 폭력이기에 교실 내 누군가가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었고, 급기야는 학부모가 이를 외부 학부모단체에 제보해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학교에서 문제 해결 의지가 없어 이렇게 학교 밖으로 불거지면, 미꾸라지 한 마리 때문에 교단 전체가 흙탕물 범벅이 되는 꼴이다. 교사의 폭력이나 부적절한 언어폭력으로 피해 본 학생들의 신고가 국가인권위원회에도 매달 20여건씩 접수된다고 한다.

현재 학교마다 학교폭력을 중재하는 학교폭력대책위원회 같은 제도가 불완전하나마 가동되는데, 비슷한 방식으로 교사의 문제 언행도 제보할 수 있는 교내 통로를 만들어 자율 제재에 나서든가, 아니면 학부모나 학생에게 제보받고도 문제 덮기에 급급한 교장에게는 지금보다 훨씬 강도 높게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