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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118조 빚은 '안 망해서' 생긴 것

namsarang 2010. 8. 19. 23:21

[시론]

LH 118조 빚은 '안 망해서' 생긴 것

  •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빚 이야기다. 이제야 큰일 났다며 소동들이지만 이미 예견된 사태였다. 수익도 없는 주택사업을 하며 팔릴지 안 팔릴지 알 수도 없는 집들을 지어댄 결말이 무엇이겠는가.

LH의 빚 문제는 공공부문 도덕적 해이의 극치를 보여준다.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다. 이야기의 시작은 정치인들이다. 어느 시대든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 수많은 선심성 개발 공약들을 남발했다. 이번 사태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던 국민임대주택·행정중심복합도시·개성공단 등 과거 정권의 공약도 그런 것이었다. 예산으로만 해야 했다면 그런 사업은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기업이라는 좋은 해결사가 있었다. LH의 전신인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빚을 내서 정치적 사업들을 모두 맡아주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전 정권은 세금을 크게 올리지 않고도 혁신도시·국민임대주택·행복도시 같은 일을 벌일 수 있었다.

공기업 입장에서는 큰 빚까지 안게 되었으나 싫어하지 않았다. 공기업 직원들에게 최선의 정책은 사업을 크게 벌이는 것이다. 민간 기업이라면 '이러다 망하면 어떡하나'는 걱정이 있지만 망할 리 없는 공기업은 망할 사업이라도 일단 큰 것이 좋다. 그래야 예산도 늘어나고 조직도 커지고 진급도 빨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도덕적 해이의 결과가 118조원이 넘는 엄청난 빚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공기업이 방만해지는 원인은 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도 망할 수 없는 기업은 반드시 방만해지기 마련이다. 이번에도 정부는 LH가 파산하도록 방치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민영화만이 사람들의 그런 태도를 바꿀 수 있다. 적자가 나면 망한다는 원칙이 분명히 서야 눈앞의 투자가 정말 가치 있는 것인지의 여부를 심각하게 따져볼 것이다.

정부는 선거 때 민영화 공약을 다시 꺼내 봐야 한다. 민영화가 안 된다면 개혁이라도 화끈하게 해야 한다. LH가 하려던 전국의 사업들을 구조조정하겠다는 선언은 다행이다. 하지만 개혁은 사업장 몇 개를 포기하는 수준이 아니라 기능 그 자체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LH가 맡고 있는 기능 중 어떤 것을 버릴지 생각해 봐야 한다.

가장 먼저 버릴 기능은 주택을 지어 분양하는 일이다. 민간 건설업체들이 훨씬 더 싼 값에 좋은 품질의 주택을 지을 수 있다. LH의 경쟁력은 토지를 수용하는 역할에 있는 만큼 앞으로는 그 일만 맡고, 그 땅 위에 주택이나 건물을 지어 분양하는 일은 민간에 넘겨야 한다.

국민임대주택 사업 역시 버릴 것을 권한다.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보조는 필요하다 해도 그것을 위해 국가가 직접 주택을 짓고 관리할 필요는 없다. 독거노인들에게 쌀을 지원해주기 위해 공무원이나 공기업이 쌀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쌀 살 돈을 주거나 쌀 쿠폰을 지급하면 된다. 임대주택 역시 마찬가지다. 저소득층에 임대료 쿠폰을 지급해서 그분들이 직접 자기가 세들 집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 당사자들에게도 더 좋다.

지난 10여년간을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도 아주 빠른 속도로 포퓰리즘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LH는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었다. 그 환부를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따라 한국의 진로도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