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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허생의 중국 문제 풀기

namsarang 2010. 8. 20. 23:08

[하영선 칼럼]

21세기 허생의 중국 문제 풀기

하영선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 하영선 서울대 교수·
                         국제정치학

중국 GDP 일본 추월… 급변 정세 속에서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박지원이 생각했던 네트워크力 강화다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드디어 일본을 앞섰다. 예상했던 일이라 매우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급변하는 동아시아 세력망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남는 길은 무엇인가라는 21세기 최대의 숙제가 한 발자국 더 성큼 다가온 것은 사실이다.

1년 전 일이다. 중국의 중견 국제정치학자와 얘기를 나누면서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수모를 겪은 지 100여년 만에 5조달러의 일본 국내총생산을 드디어 넘어서는 소감을 물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이제 5조달러를 넘어섰더라도 14억 인구를 생각하면 아직 1인당 국민소득은 4000달러가 안 되니까 일본의 4만달러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는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과 같은 답변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답변은 예상과 달랐다. "앞으로 5년 정도는 일본이 당황하겠지만 10년 내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우리 국내와 남북문제도 중요하지만 21세기 한반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문제는 동아시아 정세다. 동아시아 세력망의 구조변화를 제대로 전망하고 대응전략을 새롭게 짤 때다. 우선 국내총생산을 빌려 경제력을 보면 전 세계 62조달러의 24%인 15조달러의 미국, 이어 5조달러의 중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 1.5조달러, 한국 1조달러와 북한 100억달러다. 여기에 군사비를 덧칠하면 그림은 훨씬 선명해진다. 전 세계 군사비 1.5조달러의 44%인 6600억달러를 미국이 차지하고 있고, 중국의 공식 군사비가 1000억달러(비공식 1500억~2000억달러)를 넘어섰으며 러시아와 일본 군사비도 500억달러 규모다. 한국은 240억달러, 북한은 60억달러다.

21세기 국력의 새로운 꽃인 지식력(知識力)을 더해 보기 위해 전 세계 최고 싱크탱크 25개의 순위를 훑어보면 최상위 5개 연구소는 모두 미국이 차지하고 있고, 전체의 60%를 넘는 16개가 미국 연구소인 것에 반해서 나머지 국가들은 하나도 없다. 결국 동아시아 세력망을 가시적인 자원력(資源力) 중심으로 보면 여전히 미국이 선두인 가오리연 모습이고, 앞으로 중국의 급부상에 따른 방패연 모습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연암 박지원은 18세기 당시 조선이 직면하고 있었던 청나라 다루기의 어려운 숙제를 새로운 해법으로 풀고 있다. 허생전을 통해서 북벌론이 아닌 대(對)중국 그물망 외교를 역설하고 있다(2009년 12월 18일자 하영선 칼럼). 21세기 중국 문제 풀기는 훨씬 복잡하다. 당시나 지금이나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인 한국이 군사력이나 경제력 같은 자원력만으로 해답을 찾기는 불가능하다. 보조 해법으로 중요한 것은 연암이 강조했던 네트워크력이다. 그러나 21세기 허생이 고민해야 할 네트워크력 강화방안은 동아시아 세력망의 3중 복합구조를 제대로 파악해서 18세기처럼 하나가 아니라 다른 모습의 세 거미줄을 동시에 치는 것이다.

우선 '연결 그물망'이다. 냉전 시기에 형성된 한·미동맹이나 한·일 동반자관계를 21세기 신시대에 맞게 심화 발전시키려는 노력이다. 이제까지 국가 간의 2차원적 단일 그물 연결을 양국의 안과 밖을 3차원적 복합 그물 연결로 대폭 보완하고 주먹과 돈의 단순 무대를 지식과 가슴의 무대로 복합화함으로써 사고와 행동의 기본 원칙을 공유한다는 믿음을 심화시키는 공동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인접 그물망'이다. 한·중 관계는 지난 20년 동안 냉전적 적대관계에서 전략적 우호협력 관계로의 준(準)혁명적 변화를 겪어 왔다.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한·중 관계는 21세기적 신동맹관계로 발전하기 위한 공동노력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접 그물망과 연결 그물망의 성공적 결합이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중개 그물망'이다. 동아시아의 세력망 구조를 유심히 보면 유난히 빈 구멍이 많다. 북한은 한국·미국·일본과 구조적 공백(structural hole)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과 지역 내 국가들이 공백을 메우기 위한 그물망 짜기를 눈부시게 진행하여 왔으나 그물망의 넓이와 깊이는 아직 초보적이다. 한국이 동아시아 세력망 구조에서 자기 위치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런 빈 공간을 중개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이런 3대 네트워크 역량 강화가 한국의 전통적 자강력(自彊力) 강화를 얼마나 받쳐주느냐가 21세기 중국 문제 풀기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