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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와 천안함

namsarang 2010. 8. 19. 23:13

[아침논단]

타블로와 천안함

  •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한 가수의 학력 증거 아무리 내놓아도 의혹설은 무한 확산
천안함 사태와 같아 '자유'로 포장된 루머 개인과 민주주의 파괴

'타블로'(30세, 본명 이선웅)는 유명 힙합 가수다. 대표적인 '엄친아' 연예인이기도 하다. 음악적 재능에 명문 스탠퍼드 대학 학·석사를 3년 반에 마친 '두뇌'가 더해진 데다 창작소설까지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고전이 된 영화 '올드보이'의 스타 강혜정과 전격 결혼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런 그가 엄청난 사회적 소용돌이에 빠졌다. 학력위조 파동이 그를 강타한 것이다. 타블로의 대학 학력이 가짜라는 한 네티즌의 주장은 일파만파로 확산되었다. 스탠퍼드 대학 당국이 발행한 성적증명서를 비롯한 여러 물증을 타블로가 내놓았지만 논란이 수그러들기는커녕 더 커지고 있다. 견디다 못한 타블로측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하자 사태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타블로를 추적하는 시민이 만든,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일명 '타진요') 회원이 10만명을 돌파하고 비난의 화살이 그의 가족까지 덮쳤다. 역시 미국 명문대를 나온 친형이 '학력 의혹'으로 EBS 영어 강사 직에서 물러나고 부모와 누나의 이력까지 도마에 올라 있다.

흥미로운 건 타블로측이 내놓은 어떤 사실적 증거도 '타진요'와 그 동조자들의 확신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스탠퍼드를 졸업한 다른 인물을 그가 사칭한다는 동명이인설, 학력서류 위조설, 사진 조작설 등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사태 자체가 미궁에 빠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그 결과 사건의 추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며 의심의 대열에 합류한다.

물론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른 데 타블로의 책임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여러 매체에 등장해 과장된 자기 PR성 발언과 소설에 가까운 무용담을 쏟아놓으면서 이미지를 포장했기 때문이다. 그런 자화상 곳곳에 허점이 발견된 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문제는 연예산업 특유의 홍보 전략일 타블로의 학력 과시와 이력 자랑이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 네티즌들의 역린을 건드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순간 '타진요' 동조자들에게 그는 공공의 적이 되었다. 타블로 논란이 학력위조설에서 병역기피를 위한 이중국적설로 이전되는 지금의 상황이 그걸 입증한다.

그러나 설령 타블로가 수석 졸업생이 아니고 그의 음악이 표절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을 뿐 아니라 소설은 습작 수준이라고 누가 비난한다고 해도, 그가 스탠퍼드 학·석사를 3년 반에 취득한 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허풍 섞인 그의 입담과 과잉 혜택을 누린 개인적 행로가 아무리 얄미워도 학력의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이런 기본적 사실을 부인할 때 타블로 사태는 한국 사회의 병리를 폭로하는 '루머의 사회심리학'으로 비화된다.

루머의 사회심리학이라는 맥락에서 천안함 사태는 타블로 논란과 놀랄 만큼 닮았다. '타진요'의 신경을 건드린 타블로의 언행은 민심을 거스른 이명박 정부의 행보와 비슷하다. 다수 시민에게 위화감을 준 그의 화려한 스펙은 이른바 고소영·강부자 정권의 정체성과 판박이다. 타블로의 학력을 믿지 않는 음모론의 확대 재생산 과정은 천안함 폭침을 한국 정부의 조작으로 보는 음모론 확산 궤적과 유사하다. 타블로의 과장된 자기 홍보가 화를 키운 것처럼 한국 군의 말 바꾸기와 책임회피성 은폐 시도는 총체적 불신을 낳았다.

타블로 논란과 천안함 사태의 가장 큰 공통점은, 누구도 충족시키기 어려운 증명 부담을 끝없이 요구하면서 '합리적 의심'으로 정당화하는 데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비판의 자유로 포장된 루머가 개인을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준 것 없이 타블로가 얄밉고 원천적으로 이명박 정부를 불신한다 해도, 타블로 학력과 천안함 폭침의 압도적 증거 자체를 부인할 때 의심의 합리성은 소멸된다. 이해(利害) 관계와 진영(陣營) 논리가 부추겨 무한 확산되는 의심은 곧바로 암귀(暗鬼)로 타락한다. 의심암귀가 춤추는 세상은 지옥이 된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취도 신뢰가 무너진 사회의 삭막함과 불행을 치유하지 못한다. 자유의 미명 아래 공적(公的) 신뢰가 희롱될 때 삶의 근본이 흔들린다. 타블로 논란과 천안함 사태는 신뢰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우리 시대의 우울한 초상화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진영 논리와 마녀사냥에 대한 최선의 치료제는 신뢰밖에 없다. 공적 신뢰는 사실을 존중하는 담백한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