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팔아 노예 해방시켜, 노예들에게 복음전파 헌신
1204~1240. 스페인 포르텔라 출생. 사제. 산모와 신생아의 수호성인. 성인의 어머니는 성인을 출산할 때 극심한 산통에 시달리다 성인을 미처 다 낳지 못한 채 숨을 거뒀습니다. 때문에 성인은 제왕절개로 태어났습니다.
라이문도라는 이름 뒤에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라는 뜻을 지닌 논나토(Non-natus, 영어로 not born)가 붙은 것은 이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성인은 어려서부터 성당에서 기도드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성모님과 친구처럼 이야기를 주고받듯 기도했다고 합니다.
가난한 귀족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성인이 목장과 농장을 물려받아 성공하기를 바랐지만 성인은 남몰래 수도자의 꿈을 키웠습니다. 심성이 착했던 그는 차마 아버지 뜻을 거역할 수 없어 결국 아버지를 도우며 집안일을 배웠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하며 아버지 마음이 바뀌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청했습니다.
마침내 기도는 이뤄졌고 성인은 아버지 허락을 받아 노예해방 사업을 펼치던 메르세데의 성모회에 입회합니다. 1222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아프리카 알제리에 선교사로 파견됩니다.
그는 노예들 빚을 갚아주기 위해 가져갔던 돈이 바닥이 나자 스스로 자신을 팔아 그 돈으로 노예들을 해방시켰습니다. 또 노예들에게 복음말씀을 선포하는 데 헌신한 결과 많은 이들이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거나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런 그를 곱게 볼리 없었던 노예 상인들은 성인을 붙잡아 온갖 고문을 가했습니다. 더 이상 선교하지 못하도록 입술을 꼬챙이로 뚫어 수개월 동안 입에 쇠자물쇠를 채워놓기도 했습니다.
성인은 수도회 도움으로 노예 상인들에게서 풀려나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옵니다. 이후 교황의 부름을 받고 로마로 가던 중 열병으로 숨을 거둡니다.
성인 시신은 성인이 어렸을 적 기도하러 즐겨찾았던 성 니콜라스성당에 안치됐습니다. 성인에 대한 공식적 공경은 1625년 교황 우르바노 8세에 의해 허용됐습니다. 이후 1657년 교황 알렉산데르 7세는 라이문도 논나토를 성인품에 올렸습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