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룡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선교, 전례 사목부 담당)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1985년 난민들이 무작정 작은 배를 타고 베트남을 탈출해 남지나해를 표류하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우리나라 참치 배 한 척이 이들을 구조할 수 있도록 한국 본사에 허락을 요청했다. 그러나 베트남 보트 피플이 너무 많아 국제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었기에, 본사에서는 그들을 받지 말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선장은 고심 끝에 이 통보를 무시하고 절박하게 구조를 요청한 베트남 난민들을 구출했다.
그 뒤 여러가지 문제가 터져 나왔다. 우선 당장 식량도, 잘 수 있는 선실도 부족했다. 선장과 선원들은 난민들 중 여자와 아이들에게 자신의 선실을 양보했고, 노약자들에게는 선장실을 내 줬다. 난민 대표는 수많은 배들이 지나쳤는데, 한국배가 자신들을 구해줘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들은 한국의 난민 수용소를 통해 미국에 정착했다. 그러나 한국 선박 회사는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난민을 받지 말라는 통보를 무시했고,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게 이유였다. 선장과 선원들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고 험난한 생활고를 겪었다. 난민을 구한 대가치고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초였다. 그러던 중 베트남 난민 대표가 미국에서 간호사가 돼 생활이 안정되면서 자신과 동포들을 구한 선장을 수소문해 찾기 시작했다.
드디어 두 사람은 미국에서 재회했다. 그 대표는 선장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미국 베트남인과 한인이 함께 하는 감사 행사에 선장을 초대했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 사회에 알려졌고, 베트남 난민들은 그를 유엔 난민위원회가 주는 '유엔 난센상'후보로 추천했다. 미국 사회에서는 그 선장과 그 대표가 만나는 것을 기념해 한인들과 베트남인들이 친교행사를 개최하면서 두 나라가 자연스럽게 가까이 지내게 되는 동기도 마련했다.
선장의 행동은 우리 사회를 훈훈하게 하는 귀감으로 전해졌다. 그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지만 우리에게 배울 것을 많이 던져주었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 경제적으로 혹은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작은 사랑은 그들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가톨릭 신자인 우리가 불이익과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남을 위해 희생하고 사랑을 실천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 사랑을 알고, 그가 믿고 있는 가톨릭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게 분명하다. 선교란 이렇게 생활에서 우연치 않게 행한 사랑에서 큰 결실을 얻을 수 있다. 만일 선장이 가톨릭 신자였다면, 이러한 그의 희생이 가톨릭 신앙과 함께 사회에 더 알려 질 수 있었을 것이다.
선교 영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선교할 수 있는 대상과 시간이 언제나 있다. 이웃에게 베푼 작은 선행과 존중이 나중에는 겨자씨가 자라나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우리 신앙을 알리는 데 매우 큰 효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선교 영성은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요한 11,52) 오신 그리스도의 사랑, 사도의 사랑으로 두드러집니다. 이것은 자기 양들을 알고 그들을 찾아 나서며, 그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착한 목자의 사랑입니다(요한 10장 참조). 선교 정신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열렬한 사랑을 느끼고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교회를 사랑합니다. (「교회의 선교 사명」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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