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딸 돌보며 힘겹게 살아가는 필리핀 이주여성 아나씨

namsarang 2010. 9. 5. 22:21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딸 돌보며 힘겹게 살아가는 필리핀 이주여성 아나씨


딸에겐 코리안 드림 실현시켜 주고팠지만
 
▲ 눅눅한 습기와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 옥탑방에서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아나씨. 더위에 지친 아나씨가 방을 정리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다.


   서울 강북구 미아8동 주택가.

 아직도 도심에 이런 동네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파른 언덕의 연속이다. 구비구비 골목을 따라 올라가서야 다다른 낡은 집.

 그곳 옥탑방에 필리핀 이주여성 아나(가명, 45)씨가 어린 딸 성미(가명, 9)양과 함께 살고 있었다. 서울 하늘 아래 모녀가 머물 곳이라곤 이곳뿐이지만 그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금자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5㎡(약 1.5평) 크기 방에 들어서니 눅눅한 습기와 곰팡이 냄새가 진동한다. 한 줌 햇볕과 한 줄기 바람도 외면하는 그곳에선 벽지를 까맣게 갉아먹은 곰팡이가 무늬처럼 피어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낡은 장판 위를 지나다니는 바퀴벌레도 심심치않게 눈에 띄었다.

 재래식 화장실과 세면장은 공동으로 사용한다. 다세대주택이라 출근과 등교 시간만 되면 만원이다. 때문에 모녀는 웬만하면 방에 딸려있는 부엌 싱크대에서 얼굴을 닦고 머리를 감는다.

 보증금 없이 월세 20만 원으로 간신히 구한 집이라, 더 좋은 집으로 이사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실정이다. 아나씨는 이 모든 환경이 성미에게 죄스럽기만 하다.

 "늘 성미에게 말해요. 이렇게 자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어른인 제 자신도 견디기 힘든데, 성미는 오죽하겠어요. 그런데 제가 걱정할까봐 염려하면서 힘든 티도 내지 않아요. 저 어린 것이…."

 고개를 떨군 아나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는다.

 사실 아나씨는 필리핀에 있는 4년제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재원이다. 그런 그가 부푼 꿈을 안고 한국 땅을 밟은 것은 2000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지만 남편의 외도 탓에 6년 만에 이혼에 이르렀다.

 "남편의 외도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혼만은 반드시 막고 싶었어요. 성미에게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는 꼬리표를 주고 싶지는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이혼을 강요하는 남편 등살에 아나씨와 성미는 무일푼으로 쫓겨나 '이주여성을 위한 쉼터' 등을 전전해야만 했다. 영어를 잘 하는 아나씨는 요즘 지인의 소개로 경기도 성남에 있는 몇 군데 영어학원을 다니며 파트타임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왕복 4시간이 넘는 먼 거리지만 마다할 형편이 못 된다. 아나씨가 한 달에 버는 돈은 약 60만 원. 모녀가 집세 내고 의식주를 해결하기는 너무나 빠듯하다.

 아나씨 소원은 여의치 않은 사정으로 또래보다 1년 늦게 초등학교에 들어간 성미가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당장은 성미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깨끗한 방 한 칸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아나씨는 "성미가 친구들과 잘 어울려 행복하게 지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리암이주여성상담소 박향아(율리아)씨는 "의지할 곳 없는 아나씨와 성미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마음 편히 발뻗고 누울 수 있는 깨끗한 방 한 칸"이라며 평화신문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호소했다.
                                                                                                                                                                      이서연 기자 kitty@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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