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마음도 너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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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건아씨는 극심한 통증 때문에 한 시간이 멀다하고 진통제 주사를 맞는다. 윤미애 수녀가 한씨와 병원복도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의사 선생님, 너무 아파요. 제발 진통제 주사 좀 놔주세요." 서울 둔촌동 서울보훈병원에 입원 중인 한건아(아녜스, 55)씨는 진통제 없이는 하루도 살아가기가 힘들다. 쉴 새 없이 찾아오는 통증 때문에 하루에 스무 번 넘게 진통제 주사를 맞은 적도 허다하다. 무릎, 허리, 다리….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다. 그의 병명은 '척추뼈 고리 절제수술 후 증후군'과 '만성 난치성 통증'이다. 수술을 몇 차례 받긴 했지만 통증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환갑도 되지 않은 나이에 보행기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더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보고 싶지만 2만 원이 채 안 되는 통장 잔고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35년 전 결혼을 할 때만 해도 이렇게 힘든 삶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씨가 26살 되던 해 남편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불행의 시작이었다. 세상을 떠난 남편이 한씨와 두 아이에게 남겨준 것이라곤 감당하기 힘든 빚뿐이었다. 억척같이 일하며 남매를 키웠지만 끼니조차 해결할 수 없는 때가 더 많았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남매를 외국으로 입양 보냈다. 가슴은 찢어졌지만 "입양가면 잘 먹고 교육도 잘 받을 수 있다"는 주위 사람들 말에 더 이상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아이들을 붙잡아둘 수 없었다. 입양을 보내고 몇 년 후 두 번째 남편을 만났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였던 남편은 홀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던 한씨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줬다. 한씨 인생에서 잠시 스쳐지나갔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또 불행은 찾아왔다. 한씨가 일하던 회사에서 동료의 실수로 허리를 크게 다친 것이다. 기나긴 병원 생활이 시작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편이 전쟁터에서 입은 부상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1999년 세상을 떠났다. 두 번째 사별이었다. 고아였던 한씨의 가족이라고는 이제 두 번째 남편의 아들, 몇 년째 연락이 닿지 않는 의붓아들 한 명뿐이다. 한씨는 남편이 떠난 후 폐지를 모아 팔며 서울 반지하 월세방에서 근근이 살아왔다. 온몸이 성치 않았지만 병원을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참전용사였던 남편 덕에 받는 국가유공자 생활수당은 월세, 공과금, 식비, 약값을 제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견디다 못해 지난 3월 다시 병원을 찾았고 수술을 했다. 하지만 상할 대로 상한 몸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지금 한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보는 사람마다 붙잡고 "너무 아파요"라고 하소연하는 게 전부다. 서울보훈병원 원목실 윤미애(데레스쟌) 수녀는 "55살이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보행기 없이는 걸을 수조차 없는 한씨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뿐"이라며 "한씨가 제대로 치료를 받고 재활에 성공해 혼자 설 수 있도록 평화신문 독자들이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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