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36) 아프리카 신부들을 기억하며

namsarang 2010. 9. 20. 21:34

[선교, 할 수있을까?]

 

(36) 아프리카 신부들을 기억하며


                                                                                                                                    양해룡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선교, 전례사목부 담당)


   로마에서 공부할 때 만난 많은 사람들 중에 아프리카 신부들이 특히 기억난다. 필자가 다닌 대학은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소속 대학이라 아프리카 신부들이 많았다. 그들과 함께 기숙사에도 기거했다. 피부색이 우리와 다르고, 나라 환경이 다를 뿐 그들 대부분은 밝았다. 하지만 얼굴이 어두운 신부들도 있었다. 그들이 아프리카 어느 나라 출신이냐에 따라 분간할 수 있었는데, 내전과 가난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나라 출신 신부들은 웃음을 잃고 지내곤 했다.
 필자가 살던 기숙사에도 언제나 어둡고 힘들어 보인 아프리카 신부가 있었다. 그 신부의 고국은 가난하고 내전을 겪는 나라이며, 가톨릭은 소수였고 대부분이 무슬림이었다. 그 신부는 다른 나라 출신 신부들과는 거의 교류가 없었던 반면에 한국 신부들과는 비교적 친하게 지냈다. 기숙사 원장신부님의 말에 의하면, 함께 살고 있던 신부 중 그가 경제적으로 가장 어렵다고 했다.

 아프리카 신부들은 대부분 인류복음화성 장학금으로 공부했다. 보통 석사 2년, 박사 2년 과정 동안 교회 장학금을 받았다. 그러나 이탈리아, 독일 지역 본당과 연결돼 후원자를 얻어 학업을 연장하는 경우도 있고, 생활비 명목으로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흡족하진 않지만 공부에 지장을 받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신부는 그 어떤 후원도 받지 못했다. 그것을 알게 된 한국 신부 몇몇이 그 신부를 후원했다. 용돈을 아끼고 생활비를 절약해 십시일반으로 원장신부님을 통해 그를 지원했다. 필자도 가끔 그를 위해 용돈을 절약한 적이 있다. 이렇게해서 그 신부는 무사히 학업을 마쳤다.

 아프리카 신부와 함께 살면서 보편 교회의 특성을 체험할 수 있었다. 교회의 성숙 정도가 결코 물질적인 것에 있지 않으며, 좀 풍족한 교회가 덜 풍족한 교회를 도와주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 교회도 몇십 년 전만 해도 받는 교회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배 신부님들은 인류복음화성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업을 마쳤다고 들었다. 이젠 우리 교회가 베풀 때다. 어떤 지역 교회가 경제적 이유로 발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보편교회 일원으로서 그 교회를 위해 협력해야 할 임무가 있다. 주는 교회의 모습은 하느님께 받은 물질적 선물이 우리 것이 아니라 하느님 선물이라는 신앙고백일 것이다.

 바티칸에는 교황청 전교기구라는 선교 원조 사업을 주관하는 부서가 있다. 한국 주교회의에도 이 지부가 있다. 이러한 기구를 통해 우리는 선교 현장을 도와 그 지역교회가 성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러한 원조를 통한 애덕실천은 신앙인들에게 어려서부터 보편적 선교 정신으로 충만할 수 있게 해 주며, 그들의 선교 의식을 고취시켜 준다.
 
 저는 모든 교회, 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교회의 보편성에 열려 있고, 온갖 형태의 지역주의, 배타주의, 자만심을 배척하기를 권고합니다. 또 자국민과 자국 문화 안에 뿌리박고 있는 지역 교회들도 영적 선물, 복음화와 첫 선포에 대한 사목 경험, 사도직 수행 인력과 물적 자원을 주고받음으로써 신앙의 보편성에 대한 의식을 늘 효과적으로 유지하여야 합니다. (「교회 선교 사명」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