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40) 선교사 마테오 리치

namsarang 2010. 11. 16. 23:06

[선교, 할 수 있을까?]

 

(40) 선교사 마테오 리치


    중국 사상에 맞게 교리 재해석

    지난 5월 11일은 마테오 리치(1552∼1610)가 선종한 지 꼭 4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의 학문적, 선교사적 업적은 대단하다. 그는 보유론적(補儒論的) 선교방식으로 중국 사상의 중심인 유학을 가톨릭으로 재해석하고, 가톨릭을 중국 사상과 문화에 심은 토착화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업적보다 선교사로서의 삶을 찾아보면 그가 어떻게 중국에서 불굴의 의지로 살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마테오 리치가 배를 타고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출발해 인도와 마카오를 돌면서 최종 목적지 중국에 도착할 때까지 과정은 온통 고난의 항해였다.
 
항해를 하다 폭풍우를 만나면, 배는 목적지를 잃고 돛과 밧줄은 썩어 버렸다. 또 승객 절반은 전염병으로 앓아누웠다. 당시 발달하지 않은 항해술과 조선 기술은 배를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풍랑을 만나면 바람에 따라 해로를 벗어나게 했다. 게다가 항해 중 6개월 동안 먹을 물도 오염되고, 식기는 녹슬고, 끊임없이 몰려오는 열기와 습기로 모든 물건이 썩거나 악취를 풍겼다.

복음 선포에 쉼 없이 매진

 이런 배 안에서 마테오 리치는 헌신적으로 신앙의례를 행했다. 해가 뜨면 한 시간씩 기도를 드리고, 8일마다 한 번씩 고해성사를 보고, 양심성찰과 성인 호칭 기도 등을 바치면서 힘든 항해를 견디어 냈다. 역풍을 만나면 마테오 리치를 포함한 예수회 신부들은 배가 앞으로 나아가게 해달라고 직설적 기도를 올렸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겼다.

 당시 중국에서는 외국인들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고조돼 있었다. 이 때문에 리치를 포함한 예수회 신부들은 신변 안전에 커다란 위협을 느꼈다. 한밤중에 중국인들이 리치의 숙소에 침범해서 그를 죽이려고 방화한 사건도 있었다. 그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그가 갖고 있던 것들은 모두 불타버렸다.

 한번 자신의 고향을 떠나면 결코 다시 돌아 갈 수 없는 삶이 바로 선교사의 운명이었다. 이러한 어려움과 고난에 봉착하면서도 리치는 복음 선포에 쉼 없이 매진했다. 그는 중국 고위층과 학자 중심으로 하느님 말씀을 전파했고, 때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주류에 진입했다.

영혼의 정의 정확히 언급

 특히 성경말씀과 함께 그림이 그려진 성경을 활용하여 그들에게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달했으며, 중국 사상에 맞게 교리를 재해석하기도 했지만, 결국 독자들은 가톨릭 교리에서 답을 얻었다.

 예를 들어 「천주실의」에서 리치는 중국학자가 "신은 진실로 소멸함이 없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은 신(神, 靈)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질문하면, 리치는 "인성은 유형과 무형의 양자를 겸하고 있으며, 바로 영혼이 신체(神體)임을 증명하는 것이다"고 답했다. 계속해서 "사람은 하나의 심령이 있으며, 자유의지와 이지(理智)가 있고, 자유의지의 대상 범위는 선(善)이고, 이지의 대상은 진(眞)이다"고 정의했다.

 이렇게 선(善)과 진(眞)은 형체가 없으며, 이것은 신체, 곧 영혼이라고 지적했다. 리치는 인간에게도 육체와 영혼의 결합과 함께 영혼의 정의에 대해 정확히 언급하고 있다.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들의 놀라운 증거는 그리스도교가 세계 종교로 자리 매김할 수 있는 초석을 다진 놀라운 사건이었다.
 
 이 특수 소명(선교사의 소명)은 복음화를 위한 전적인 헌신으로 나타나고, 이 헌신은 선교사의 전인격과 전생애를 포함하고, 능력과 시간의 한계 없는 자기 봉헌을 요구하는 것이다. (「교회의 선교 사명」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