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42) 선교 성공의 비밀

namsarang 2010. 11. 29. 21:41

[선교할 수 있을까]

 

(42) 선교 성공의 비밀


양해룡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선교, 전례사목부 담당)


   어느 본당에서 한 단체 단원들이 성체조배를 시작으로 14개 팀으로 나눠 팀별 구호도 만들고, 작품도 만들어 선교 의지를 다졌다. 또 평신도 선교 체험도 듣고 미사를 통해 선교의지를 주님께 봉헌했다. 서로 머리를 짜내 선교 방법을 마련한 뒤 본격적으로 거리선교와 냉담교우 방문 활동을 실시했다. 대부분의 본당에서 선교는 이렇게 진행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썩 좋지 않거나, 일회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훈련 기간이 너무 짧은 것이 이유 중 하나다. 훈련을 단시일에 끝내고 바로 실전에 들어가기에 효과가 나지 않는다. 선교도 훈련이다.


 '위대한 사람들처럼 특별한 능력을 타고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선교에 뛰어나 많은 사람들을 입교시켜서 교회에 이바지하면 어떨까?'하는 바람이 있을 것이다. 최고의 테니스 선수 샤라포바는 러시아 허름한 테니스 코트에서 탄생했다. 세계 1위 '샴바 축구' 전설의 브라질 축구는 선수들이 시설이 잘 갖춰진 잔디 구장에서 연습하고 갈고 닦은 축구가 아니다. 우리가 상상 못하는 그런 장소, 배구장 크기의 작은 공터에서 자신의 실력을 키웠다. 이렇게 우리 능력은 반드시 좋은 환경에서 나오거나 타고난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탤런트 코드」라는 책에서 대니얼 코일은 우리의 능력은 바로 반복된 훈련을 통해 개발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실수 연발과 어설픈 행동이지만 꾸준히 훈련하고 반복한다면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놀라운 능력을 갖추게 된다고 말한다.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아니 능력을 갖추려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외국어를 배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꾸준한 노력과 연습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물론 어학의 기질은 있다. 하지만 그 기질에 숨은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부딪치고 수정하고 그래서 외국어가 내 말이 되기까지는 훈련하는 수밖에 없다.


 선교도 역시 훈련이 필요하다. 하루나 며칠 단시간에 이뤄지는 훈련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학습하고 노력하고 꾸준히 실천하고 그래도 안 되는 것을 찾아 반복 훈련하는 수밖에 없다. 그 선교 훈련이 내 것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이웃에게 선교할 수 있을 것이다.


 선교 훈련 방법은 우선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속에 제일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 하느님 체험을 통한 완전한 회개이다.


 그 처절한 하느님 체험에서 비로소 나는 세상에 눈을 돌려 세상이 얼마나 하느님과 멀어져 있는지 깨닫고, 선교사로 나설 것을 다짐한다. 내가 믿는 우리 주 예수님이 누구이며, 교리가 무엇인지 곱씹어 내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생활에 옮기는 애덕 실천을 습관화한다. 본격적으로 이웃에게 우리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선교 대상자와 어떻게 대화해야 하며, 그들 이야기를 어떻게 듣고, 나의 하느님 체험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지 반복 훈련한다. 대상자 질문에 정확히 설명할 수 있도록 교리 설명도 반복 연습한다. 홀로 하는 선교가 아니니 팀을 구성해서 서로 피드백(feedback)을 받으면서, 함께 선교할 수 있는 조직을 구성해 본당 구역 안에서 이웃에게 선교를 실천하도록 노력한다.


 선교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연습이고 훈련이다. 공동체가 시간을 내 예수님께서 주신 지상 사명인 선교에 투신해 보자.
 
 만민 선교는 실제로 그리스도인 생활의 일반적 결과로 여겨졌고, 모든 신자는 될 수 있는 대로 개인적 삶의 증언과 명확한 선포로써 선교에 헌신하였습니다.                                                                                                                                                                      

                                                                                                                                                                           (「교회의 선교 사명」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