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가지의 ‘금’
해마다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된다. 연말연시가 다가오면 왠지 착잡하거나 들뜬 기분으로 허둥지둥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곤 한다. 12월은 송년회다 뭐다 하며 한 해와 작별을 고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1월이 되면 새해 계획을 세운다 어쩐다 하다가 설날을 맞고서야 제정신을 차리곤 한다. 뒷걸음치듯 물러가는 시간과 행진하듯 밀려오는 시간. 그 앞에서 의례적 반성과 상투적 다짐을 하느라 정작 오늘을 바라보는 기쁨과 지금 이 순간에 대한 관심은 연중 가장 소홀해지는 때이다.
들뜬 기분에 흘러가는 연말연시
때론 반짝이고 때론 지리멸렬한 일상의 조각 속에서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각오가 없을 수야 없겠지만, 그러느라 아까운 현재는 철지난 별책부록처럼 무심히 지나치고 만다. 아는 분이 시간을 쪼개 송년 e메일을 보내주셨는데 거기에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대사가 적혀 있다. 영겁의 생명이 보장된 천사의 직분을 버리고 사랑을 위해 인간의 유한한 삶을 선택한 천사는 이렇게 말한다.
“영원한 정신적 존재라는 게 지겨울 때가 있어. 더 이상 영원한 시간 위를 떠도는 게 아니라 매순간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지금’ ‘지금’ ‘지금’이라고 말하고 싶어.”
단 한 번뿐인 삶. 인간은 영생을 소원하지만 지금을 제대로 사는 것이야말로 영원히 죽지 않는 천사의 삶만큼 의미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삶에 필요한 3가지의 금이 있는데 그건 바로 황금, 소금, 지금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세 가지 금 중에 단연 황금을 첫째로 꼽을 테지만 황금보다 소금, 소금보다 지금에 대한 관심을 한 뼘씩 늘리는 것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은 아닐까. ‘황금’에 대한 욕망은 조금만 더 줄이고, ‘소금’은 과하거나 부족함 없이 적절하게 사용하고, ‘지금’에 대한 열정은 조금만 더 키울 수 있다면 인생의 균형을 잡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날이 그날 같지만 내 몸 하나만 들여다봐도 똑같은 하루는 없다. 잠시 잊고 지내도 손톱이 자라 있고 앞머리는 어느새 덥수룩하다. 최근 어느 전시장에서 접한 옛 한시가 오래 가슴에 남는다. ‘내일 또다시 내일, 내일은 어찌 그리 많은가/나는 평생 내일을 기다려 모든 일을 헛되게 보냈네.’ 삶의 무게는 비록 버겁지만 이미 흘려버린 날에 연연하거나 아직 오지 않은 날에 거창한 기대를 걸기보다 찬란한 지금을 느끼며 살고 싶다. 남아 있는 나날 가운데 내가 가장 젊은 날은 바로 오늘이기에.
‘결국, 모든 시간은 모래가 될 것이다/한없이 느린 거북 등의 해시계를 본다/나뭇가지가 길게 뻗어와 시간의 방향을 가리킨다/서둘러야 한다. 사막은 끝이 없다/모래시계에서 떨어지는 모래의 허리가 점점 가늘어 진다/끊어질 것만 같다 서둘러야 한다.’(송찬호의 ‘소금의 말’)
한 해 내내 바빴던 사람들이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느라 더욱 바빠진 송년의 시기. 내게 주어진 365일은 한결같건만 더 쫓기는 몸과 더 번다해진 마음으로 엉거주춤 사는 듯한 요즘이다.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 더 절실
묵은해와 새해라는 인위적 구분의 번잡한 소용돌이에 꺼둘리며 과거와 미래에 붙들리는 것은 불안하고 허전해서일 것이다. 그럴수록 내 앞에 펼쳐지는 삶에 집중하고 싶다.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고 오늘을 경이롭게 사는 것. 한 해를 산뜻하게 배웅하고 맞이하는 선택이리라.
‘이제, 또 다시 삼백예순다섯 개의/새로운 해님과 달님을 공짜로 받을 차례입니다/그 위에 얼마나 더 많은 좋은 것들을 덤으로/받을지 모르는 일입니다/그렇게 잘살면 되는 일입니다/그 위에 무엇을 더 바라시겠습니까?’(나태주의 ‘새해 인사’)
고미석 전문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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